2024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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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무려 21년 만에 신약 필사, 지적장애인이 주님께 드리는 선물

지적장애 3급 송장욱(미카엘)씨의 성경 필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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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30일. 희망의 대림 시기가 막 시작하던 그때, 아들이 느닷없이 엄마에게 질문했다. “엄마, 성경 한 번 써볼까예?”

무슨 바람이 들어선지 당시 20대 후반이던 아들 송장욱(미카엘, 51, 부산교구 정관본당)씨가 엄마에게 성경 필사 선언(?)을 했다. ‘우리 아들이 설마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엄마의 보살핌과 가족의 응원으로 성경 필사를 시작한 지도 21년째이던 올해. “엄마! 내 드디어 완성했습니데이~!” 그가 올 초 장장 21년 만에 신약을 완필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월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 명의로 수여되는 ‘성경 완필 인증서’를 받았다. 대림 시기를 지나 다시 찾아온 주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15일 부산 기장군 정관읍 정관성당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엄마는 글 쓰고, 아들은 하느님 말씀 쓰고

“아, 조금 힘들었어요. 음… 근데, 재미있었어요.”

송씨는 무려 20년 넘게 쓴 신약 완필 소감을 아주 짧게 답했다. 긴 시간 공들인 자신의 노력에 미사여구를 써서 힘주어 의미 부여를 할 만도 한데, 돌아오는 대답은 짧고 간단했다. 송씨는 지적장애 3급인 장애인이다. 어릴 때에도 체구는 컸지만, 언행이 또래만큼 발달하지 못했고, 나이가 들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도 짤막한 대화는 가능하지만 단답형이다. 글자를 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내용의 깊은 이해를 요구할 수 없다.

“엄마, 공부 가르쳐주세요.” 성경 쓰기를 하자는 뜻이다. 성경 필사는 그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직장에 다녀오면 펜을 잡고 성경 쓰기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에게 성경 필사는 결코 쉽지 않았다. 받침을 곧잘 빼먹기도 하고, 썼던 구절을 또 쓰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 옮겨적는다는 것도 큰 작업이었다. 하루 한 바닥을 쓰기도 버거웠다. 그래도 엄마 박씨는 삐뚤빼뚤 써내려간 아들의 필사를 날마다 확인하고 사인을 해줬다. 받침이 없으면 채워주고, 빠뜨린 구절은 대신 써주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묵묵히 지켜봤다. ‘우리 아들, 오늘도 잘 썼네.’

“우리 엄마는 시인! 아빠는 화가.” 송씨는 인터뷰 중에도 연신 작업실 한편에 놓인 아빠의 그림들과 엄마가 쓴 시 작품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닭을 키우고 병아리가 달걀을 낳는 이야기를 하는 등 엄마의 제재에도 자신의 관심사를 자꾸만 꺼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을 찾아온 기자를 친구처럼 여겼다.

송씨의 말대로 부친은 부산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을 지낸 송영명(안토니오, 79) 서양화가이고, 모친 박옥위씨는 시조시인이자 수필가로 40년 동안 활동해 온 여류작가다. 부부는 40년 세월을 교사로, 작가로 살았다. 아들이 그래도 하느님 말씀을 써보겠다고 한 것이 어쩌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부모의 모습을 따라 신앙적으로 표출해보려 했던 것은 아닐까. 주님 말씀을 다 이해하진 못해도, 글씨를 그림 그리듯 해도 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꾸준히 말씀을 써내려 간 것이다. 이런 풍경을 엄마는 작품으로 썼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카치니 아베마리아를 듣는 오후’다.



소나기 한바탕 한더위를 씻고 간 후 / 매미의 화답송이 푸르게 쏟아지고 / 여름은 점층 초록빛 에움 없이 푸르다

아이는 삐뚤빼뚤 성서를 쓰고 있고 / 나는 솔기를 펴가며 빨래를 개키고 / 카치니 아베마리아는 빗물처럼 흐르고

성모님 노래는 왜 그리 많아요? 엄마! / 아이는 고린서(코린토) 2서 7장을 삐딱삐딱 넘어가고 / 비 맞은 베고니아꽃이 함초롬히 웃는다

그건 어머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란다 / 아이는 7장 3절을 살밋살밋 건너가고 / 아아아 아베마리아 산마을도 푹 젖는다 (‘카치니 아베마리아를 듣는 오후’ 박옥위 데레사)



▲ 무려 21년 만인 올해 신약 성경을 완필해낸 송장욱씨가 쓴 요한 묵시록 필사 노트.




주님의 특별한 아들

엄마 박씨는 “그 옛날 임신했을 때 아이와 임신부에게 좋다는 한약을 먹은 까닭인지, 병원에서 멋모르고 엑스레이 촬영을 했는데 그 이유 때문인지…. 제가 참으로 어리석었다”며 말 못할 돌덩어리처럼 무거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들은 그래도 밝게 자라줬다. 수집하는 것을 좋아해 병뚜껑을 색깔별로 모으기도 하고, 제대로 읽지도 못할 책을 모아 만족해했다. 커서는 상점에서 구입하고 쓴 병은 반드시 그 가게에 돌려주는 습관도 생겼다. 성당 주변에 버려진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보이면 바로 치워야 한다. 송씨는 “자연이 파괴되니까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의 방식으로 ‘환경 지킴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부모는 기도로 아들을 키웠다. 밖에서 지나가던 아이들이 아들더러 ‘바보야’라고 놀려도, 목소리가 커서 주변 시선이 느껴지는 나날과 숱한 아픔도 모두 주님이 지켜주신다는 생각으로 지냈다고 했다.

그럼에도 송씨는 신앙인으로 자라줬다. 2001년 척추에 고름 주머니가 생기는 질환이 발견돼 10시간 가까운 수술에 임하고 난 뒤, 그가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 처음 한 말은 십자가와 성모님 앞에서 “아버지, 어머니 제가 돌아왔습니다”였다. 과거 가족 가운데 아버지만 세례를 받지 못한 상황이 안타까웠는지 “아빠만 오면 다 오는데…”라며 결국 아버지를 주님의 집으로 이끈 아들이었다.

어머니 박씨는 “누군가 아프면 아들은 ‘우리 구원자 예수님! 그를 빨리 낫게 해주세요’ 하며 기도하기도 하고, 제가 힘들까 봐 집안 청소며 설거지까지 솔선수범해준다”고 했다. 송씨는 매주 참여하는 미사 때엔 누구보다 성가를 크게 부른다. 기자에게도 “판공성사 안 보면 큰일 난다. 성당 못 나간다”며 철저한 신앙관도 보였다. 교우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안에 살아가는 그를 본당 사제들이 더욱 챙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머니 박씨는 “하느님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말씀을 손으로 써가면서 주님을 알게 됐으리라 생각한다”며 “사랑으로 돌봐주신 주님과 응원해주신 신부님, 신자분들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성탄의 기쁨, 그리고 새 희망

송씨는 “이제 구약 성경 쓰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런데 “마음에 들게 써지지 않아 계속 다시 쓰고 있다”며 “이젠 더 빨리 분발해서 빨리 쓰고 엄마한테 사인받고 싶다”면서 새로운 각오를 밝혔다.

어머니 박씨는 “구약을 언제 다 쓸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도 작은 희망이 되면 좋겠다”며 “특별하고 소중한 제 아들과 가족을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 기도한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진 지 10분 만에 전화가 왔다. “잘 가고 있습니까? 언제 또 볼 수 있습니까?” 낯설게 느낄 줄만 알았던 잠깐의 만남조차 그는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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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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