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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요셉의원 인근 주민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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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요셉의원 전경. |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 말라본시. 수도나 전기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태반인 곳이다.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무리 아파도 병원은 언감생심이다. 그런 주민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 주고 있는 곳이 있다. 자선의원 ‘필리핀 요셉의원’이다. 필리핀 요셉의원은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요셉의원의 해외 분원이다. 의원은 ‘진료비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라는 요셉의원의 정신에 따라 무료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급식사업, 장학사업, 주거환경 개선 사업 등 빈민을 위한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타국에서 소외된 이들의 의식주를 책임져 온 지도 어느덧 10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필리핀 요셉의원의 하루를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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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요셉의원 의료진이 환자에게 처방에 따라 약을 건네고 있다. |
내과부터 부인과까지, 진료비 0원필리핀 마닐라 국제공항을 벗어나자 열악한 판자촌 뒤로 화려한 마천루가 펼쳐졌다. 필리핀의 빈부격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풍경이다. 그렇게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쯤 달려 도착한 메트로 마닐라 말라본시. 공장 폐수로 검게 변해버린 천변에 다닥다닥 지어진 판잣집들이 늘어섰다. 사람 한 명 오가기 벅찬 좁은 골목에는 비바람만 간신히 막을 수 있는 집들이 빼곡했다. 도로는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륜차와 자동차가 오갈 때면 뿌옇게 먼지가 일었다. 필리핀 요셉의원은 필리핀에서도 가난한 지역에 속하는 이곳, 말라본시 마이실로에 있다.
필리핀 요셉의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문을 연다. 내과와 소아과, 외과, 가정의학과, 부인과까지 진료 과목도 다양하다. 때에 따라서는 안과와 치과 진료도 하고 있다. 진료가 시작되기 전부터 의원 앞마당은 장사진을 이룬다. 혹여 환자가 많아 진료를 받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는 주민들의 대기 행렬이다. 일찍이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린 유노라 토팔씨는 “오전 6시부터 기다렸다”고 말했다.
진료가 시작되는 오전 9시.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마당에 금세 진료소가 차려졌다. 금요일은 내과 진료가 있는 날. 담당 의사는 유리벽 너머로 환자의 증상을 듣고 이에 맞는 처방을 내린다. 처방전에 따른 약을 제공하는 것까지 필리핀 요셉의원의 몫이다. 물론 진료비와 약값까지 전부 무료다. 간호사는 약을 건네며 주의사항을 꼼꼼히 전한다. 병원이라면 문턱도 밟아 본 적 없는 이들에겐 소중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의원을 찾은 이비타 디하노씨는 “필리핀 요셉의원은 정말 좋다(good). 아름답다(beautiful). 정말 좋은(nice) 병원”이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영어 단어를 모두 동원해 요셉의원을 칭찬했다.
원장 김다솔 신부는 “필리핀의 병원비가 굉장히 비싸고 생활 수준에 맞지 않아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아프더라도 집에서 참고 기다렸다가 병을 키워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병이 쉽게 낫지 않거나 위중한 상태로 찾아오는 이들. 요셉의원이 검사도 치료도 오랜 시간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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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민가 아이들에게 배식을 하는 모습. 필리핀 요셉의원은 260명의 아이들에게 점심 식사를 지원하고 있다. |
빈민촌 아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이날 필리핀 요셉의원의 진료를 받은 이들만 55명. 하지만 의원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진료를 잠시 멈추는 점심시간, 의원 사람들은 인근 빈민촌으로 향한다. 트라이시클(사람이나 짐을 실을 수 있는 수레를 단 이륜차)에는 커다란 보온박스들이 가득 실렸다. 빈민촌 아이들에게 나눠줄 점심이다. 필리핀 요셉의원은 말라본 지역에서도 더 가난한 지역을 찾아가 260명의 아이들에게 밥을 나눈다.
아이들까지 동원돼 숯을 만들어 파는 지역 ‘덤프 사이트’. 100명의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동네 입구부터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은 나무를 태우고 남은 재로 새까맣게 변했다. 나무 부스러기들과 온갖 쓰레기들은 전혀 치워지지 않았다. 그 위로 제대로 된 신발을 신지도 못한 아이들이 온몸에 검댕을 묻힌 채 뛰어놀고 있다.
배식소에는 어느새 빈 그릇을 든 아이들이 길게 늘어섰다. 이날의 메뉴는 필리핀식 돼지고기 감자조림. 배식 봉사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에 쌀밥을 꾹꾹 눌러 담는다. 아이들은 행복해진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향한다. 이날 배식 봉사에 함께한 말루씨는 “많은 아이들에게 나눠야 해 더 넉넉히 주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그럼에도 배고픔에 시달리는 빈민가 아이들에게 의원의 배식은 더없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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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식 사업이 이뤄지는 덤프사이트 아이가 숯을 만들고 있다. |
질병뿐 아니라 집도 고쳐드립니다강변을 따라 슬레이트와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집. 그나마 시멘트라도 발려 있으면 다행이다. 사실상 야외와 실내가 구분되지 않는 집들이 더 많다. 우기가 되면 집안으로 물이 새고 곰팡이도 자주 핀다. 가재도구들이 젖는 것은 물론, 피부병이 생겨 의원을 찾아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필리핀 요셉의원은 병만 고치지 않는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주민들의 집을 고쳐주는 사업도 병행한다. 이 사업은 지난 2021년부터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의원 관계자들은 수시로 집 보수 사업 현장을 찾아 상황을 확인한다. 지금까지 이 사업으로 40가구가 새 단장을 마쳤다.
보수 공사 현장으로 향하던 중, 한 여성이 의원 일행을 붙잡았다. 열악한 자신의 집에 방문해 달라는 것. 곧장 그 집으로 향해 상황을 살폈다. 집 앞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였고, 그곳에서 생업으로 파는 건어물을 말리고 있었다. 나무 바닥 위의 아이는 나오지 않는 TV를 붙잡고 씨름하는 중이었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의 요청에 즉각 응답하는 것도 요셉의원의 역할이다.
장학사업,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다진료와 급식, 집 보수가 물고기를 나눠주는 일이라면, 필리핀 요셉의원의 또 하나의 주요 사업인 장학사업은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일이다. 필리핀은 아직 학교도 2부제 이상으로 운영될 만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수가 많다. 교육은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이를 일찍이 깨달았던 의원 설립자 고 최영식 신부는 아이들이 좋은 인적자원으로 성장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개원초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했다.
장학생으로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이반 마그두아씨는 후원자들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필리핀 요셉의원은 ‘집’과 같은 곳”이라며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나의 형제이자 어머니, 후견인이 되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시 장학생으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모니크 산토스씨는 “의료선교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이 하느님 사명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밝혔다.
올해 기준 필리핀 요셉의원의 장학생은 모두 44명이다. 초등학생 3명, 중학생 26명, 고등학생 5명, 대학생 10명이 장학금을 받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가고 있다.
필리핀 말라본=김형준 기자 brotherjun@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