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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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의 새 지침, ‘능동적 참여’의 본뜻 구현하다

[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9. 클리프턴 대성당의 ‘능동적 참여’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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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리프턴 대성당 내부 출처=Phil Boorman

 

 
▲ 클리프턴 대성당 세례소 출처=Phil Boorman

 

 

 

 


영국 브리스톨에 있는 클리프턴 대성당(Clifton Cathedral)은 우리가 별로 듣지 못하는 성당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 지침에 따라 ‘최초’로 지어진 영국 대성당이다. 1965년과 1966년 사이에 설계되어 1973년에 완성되었다.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많이 지었던 1960년대의 성당이라, 내부는 온통 노출 콘크리트 구조여서 얼핏 냉정하게 보이고, 회중석에 배열된 개인 의자도 낯설게 보인다.



콘크리트로 만든 강론

그런데 이 성당은 이렇게 평가되고 있다. “클리프턴 대성당에 나타난 물질과 공간의 통합은 어떤 시대의 대성당도 이루지 못한 것이다.” “클리프턴 대성당은 놀라운 평온함과 기쁨이 단순성과 분명하게 결합해 있다.” “이 성당은 경외가 아니라 경의를 불러일으킨다. 마음을 드높여 주는 그리스도교의 성전이며 콘크리트로 만든 강론이다.” 이런 평가는 과장된 것일까?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해서 지어졌기에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일까?

설계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000명의 회중이 제대를 가깝게 둘러싸는 것, 그리고 모두가 회중의 일부가 되어 미사 거행을 함께 느끼는 전례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이 성당의 성공은 6각형 도형으로 제단과 회중석의 거리를 멀지 않게 하면서 폭을 길게 한 데 있다. 흔히 보는 정사각형이나 원형 평면의 성당과는 달리, 평면이 깊이보다 좌우 폭이 넓은 6각형이다. 제단은 성당 깊이의 대략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제단과 회중석은 가깝다. 제단도 6각형인데, 그중에서 세 변이 회중석을 향하게 했다. 회중석에는 기둥을 전혀 두지 않았으므로 회중 전체가 어디서나 전례를 잘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제단은 모두 네 단이다. 제일 위의 단만 제대를 강조한다. 대신에 제단은 전체적으로 낮고 넓게 펼쳐져 있고, 회중석의 바닥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중에서 제일 아래 단이 넓게 퍼져 있어서 회중석과 연결되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제일 아래 단은 회중석과 꽤 거리가 있다. 높이보다는 거리로 제단의 위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제일 아래 단의 한가운데는 제단 바닥과 같은 재료를 깔았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회중석은 넓고 제단이 좁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그 때문에 제단은 회중석 쪽으로 연장된 느낌을 주고, 성체를 영하려고 제일 아래 단에 올라서면 자신이 감히 제단에 올라서 있다고도 느끼게 된다. 문지방과 같은 경계선이다.

중심축의 끝에는 등이 높은 주교좌가 있고 그 뒤로 벽이 낮게 뚫렸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의 중심성을 크게 강조해 준다. 제단 오른쪽에는 오르간을 두었다. 그러면 성가대석은 어디일까? 주교좌 좌우로 좌석을 두었는데 그 오른쪽이 성가대석이다. 이로써 회중은 성가대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따라 함께 찬미할 수 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12항대로 성가대석은 신자 공동체의 한 부분이고 다른 회중과 똑같이 성체를 받아 모시며 미사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에 놓여 있다. 그런가 하면 제단 뒤는 바닥 높이의 차이가 있어서 회중석에서는 제의실로 오가는 모습이 전혀 안 보인다.

회중석의 제일 뒤 주보랑에는 천창에서 들어온 빛이 14처를 새긴 긴 콘크리트 벽면을 밝게 비춰준다. 주보랑 안쪽 약 9m 위로 벽이 높게 에워싸고 있는데, 천창의 빛이 이 벽을 밝게 비춰준다. 천장은 점점 높아지다가 제단 앞에서는 약 16m가 되고, 제대 위에서는 45m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제대를 향해 높아질수록 빛은 점차 강조된다. 그런 제단 위를 6각형으로 뚫린 큰 보가 공간을 수직적으로 크게 분절해 준다.

세례는 모든 회중 앞에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세례소는 서쪽 포탈 안쪽에 놓았으므로 회중석에서는 세례소를 볼 수 없었다. 이에 클리프턴 대성당은 거듭남의 의미를 분명히 하도록 입구 가까운 곳에 세례소를 두면서도 제단 가까이 놓아 회중과도 이어지기를 원했다. 이에 건축가는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치밀하게 연구한 다음, 주 출입을 세례소 쪽으로 옮겼고, 그 뒤에 성체 경당을 두어 회중석 어디에서나 이 두 요소를 충분히 잘 볼 수 있게 했다. 제단 왼쪽에는 세례소와 성체 경당이 아래 함께 놓여 있는데, 천장의 높이도 같다. 그 결과 ‘세례소, 거듭남, 독서대,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라는 의미 관계가 공간적으로도 연결되고 교차한다. 65명이 앉을 수 있는 성체 경당은 닫혀 있으면서도 제단으로 열려 있어 축일에 성당이 붐빌 때 회중석을 보완하게 했다.


능동적 참여를 반영한 성당

그런데 이 성당 설계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 지침을 구체적으로 찾아간 방식이었다. 클리프턴 대성당은 현상설계를 하지 않고 먼저 건축가 팀을 선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4개월 동안 2주에 한 번 사제와 평신도로 구성된 건축위원회와 대화함으로써 선정한 건축가 팀이 설계조건을 구체적으로 찾아가게 한 것이다. 성당에 요구한 조건에 맞는 안을 선택하지 않고, 반대로 ‘능동적 참여’의 본모습을 함께 찾아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말이 쉽지 성당 건물에 대한 뛰어난 식견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어려운 작업이다.

건축가는 사제, 복사, 평신도들의 순환 경로와 그 의미를 주의 깊게 기록했다. 그리고 이것을 복잡한 다이어그램으로 정리하여 ‘전례 지침서(Liturgical Brief)’라고 부르는 상세한 설계 문서를 만들었다. 그 안에는 미사를 드릴 때 주례 사제가 제단에 서게 되는 세 개의 위치를 하나의 단면도에 모두 담은 다이어그램도 있고, 제대 앞에 섰을 때, 독서대에 섰을 때, 성체를 분배하려고 성체 난간에 섰을 때, 회중석에서 주례 사제를 하나의 시선에서 바라보게 하려는 그림도 있다.

건축가 팀은 회중석을 특정한 경우에 특정한 동작을 하는 정적인 자리가 아니라, 행렬을 이루기도 하고 부속하는 장소에도 가기도 하는, 그래서 제단보다 오히려 더 복잡한 자리로 보았다. 그리고 이중 화살표로 표시하면서 회중의 잠재적인 이동 경로를 찾아갔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의견을 받아 여러 유형의 평면을 제시했고 최종적으로는 주임 신부가 부채꼴 모양의 평면을 선택했다. 그만큼 사제가 성당 건축의 이해가 깊었다는 뜻이다.

건축가 팀은 가톨릭 신자들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교회는 전례의 변화와 성당을 구성하는 용도와 관련하여 이들과 근본적인 질문을 주고받았다. 이를테면 건축가가 “제단의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이런 질문에도 사제는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제와 평신도 그리고 건축가는 공의회가 요청한 ‘능동적 참여’의 본뜻과 전례의 의미를 ‘공간’으로 확인해 갈 수 있었다.

60년 전의 그들과 비교하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도 성당을 이렇게 설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능동적 참여’를 이처럼 번안한 성당이 우리에게 있는가? 해법과는 무관한 것만 나열하면서 ‘능동적 참여’로 성당을 설계했다고 말만 하는 것은 아닌지, 또 당선안으로 선정하고 나서야 새 성당의 설계조건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우를, 그것도 계속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할 일이다.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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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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