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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원의 소록도 이야기]17- 오마도여, 아! 오마도여- 질시와 불안의 눈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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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명의 이기(利器)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당시 매립공사 현장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우리에게는 제대로 된 장비가 하나도 없었다. 시쳇말로 문둥이들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데 국가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손발이 성치 않은 이들이 온 몸으로 암석을 지어 나르는 작업이라니. 석 달을 넘게 돌을 져 날라 바다에 던져도, 만재도 그 큰 섬의 절반이 잘려 나갈 만큼 돌을 퍼부어도 둑은 올라서지 않았다.
 나는 두려웠다. 저들이 포기할까 두려웠고, 나 자신이 약해질까봐 두려웠고, 결국에는 이 일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한센인들이 다시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웠다.
 아예 바다를 쳐다보는 것조차 무서워졌다. 무섭도록 시퍼런 바다에 나를 원망하고 질타하는 한센인들 모습이 중첩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설상가상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제3방조제 봉암리 공구에서 낙석이 인부 하나를 덮쳤다. 밤이 되자 마을 청년들이 찾아와 책임을 추궁했다. 하지만 괴로웠던 것은 사후 방지대책과 사과에 대한 모욕감이 아니라, '오마도 간척사업은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는다'는 식의 비아냥거리는 태도였다.
 아무도 이 사업을 반기는 이가 없었다. 처음 이 사업에 대한 설명을 하던 날, 교회에 모인 장로들마저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하시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봉암리 공구에서 사보타지가 시작됐다. 다행히 축구원정팀이 고흥과 광주에서 승리했다는 소식과 콩쿠르에서 뽑힌 한센인 가수들의 위문공연으로 사보타지는 누그러졌다.
 1963년 1월 8일, 또 불상사가 일어났다. 봉암리 공구 성토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그 밑에서 흙을 토차에 싣던 인부 1명이 압사하고 6,7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러자 내게 처음 소록도 간척공사에 관한 언질을 줬던 박순암이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원장님! 꼭 하라면 하겠지만 더 이상 의욕이 나질 않습니다. 앞으로 더 큰 불상사가 생기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공사기술을 담당한 용역단의 장비와 기술력이 매우 부족한 것 같습니다”
 박씨는 소록도의 모든 공사를 도맡아 처리하면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의견을 잘 경청했지만 이날 만큼은 거칠게 반박했다.
 "영감 돌았어? 진시황이 공과대학 나오고, 지금처럼 장비가 좋아서 만리장성을 쌓았나? 또 나폴레옹이 등산가라서 알프스 산맥을 넘었나?”
 상황이 워낙 절박했다. 도처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을 모두 들어주다가는 한센인들의 패배감을 더 부채질할 게 뻔했다. 또 어떤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이 공사는 마무리돼야 했기에 부득이 군인정신으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원생 간부 12명을 배에 태워 장흥 대덕의 간척공사장으로 향했다. 간부들이 먼저 이러한 공사장을 견학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날 둘레 20m가 넘는 간척공사장을 낱낱이 구경시켰다. 내 뜻은 오직 하나였다. 그들에게 주문을 걸듯 되뇌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한센인들도 보란 듯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땅이 생긴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타게 찾아 헤맨 가나안 땅이 저기 눈앞에 있다.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된다'.
 그들에게 보여줄 기적의 현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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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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