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코로나19 시기 신앙과 삶’ 설문조사 결과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한국 교회는 대면 미사가 중단되는 미증유(未曾有)의 상황을 경험했다. 신앙생활은 방송과 온라인 등 비대면 중심으로 이뤄졌고, 본당 역시 오랜 시간 활동을 멈춰야 했다. 커다란 변화의 여파가 ‘한국 천주교회 코로나 팬데믹 사목백서를 위한 설문조사’에 여실히 나타났다.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담당 김종수 주교, 소장 곽용승 신부)는 전국의 만 19세 이상 천주교 신자 1063명, 비신자 국민 1000명에게 코로나19 시기 전후의 신앙생활과 삶의 변화, 교회에 바라는 점 등을 물어본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미사 참여율 직격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는 주일 미사 참여율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주일 미사에 매주 참여하는 신자 수가 팬데믹 이전의 70 수준에 머물렀다. 이 가운데 15.3는 앞으로도 참석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미사 불참 사례가 더 많았고, 연령과 소득이 높을수록 주일 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많았다. 주일 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는 신자 가운데 37.1는 신앙생활 기간이 31년 이상 된 이들로, 오랫동안 미사 참여를 열심히 해온 이들에게도 타격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사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주일 미사 불참에 익숙해져서’라는 대답이 58로 가장 많았다. 고해성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과 감염 우려 등도 미사 참여율 감소의 원인이었다. 당분간은 미사 참여율이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응답자 가운데 절반(40.3)에 가까운 이가 앞으로 주일 미사 참여자가 더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신자들의 이탈은 코로나 이후 더욱 가속화됐다. 팬데믹 이전, 절반을 조금 넘었던 20대 청년들의 주일 미사 참여율(53.2)은 36.1로 20p 가까이 감소했다. 신앙생활에 적극적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음에도 미사 참여율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5.4는 특별한 경우에만 참여하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미사 불참 이유 또한 코로나19 감염 걱정(43.9), 주일 미사 불참에 익숙해져서(33.3)라는 순이었다. 특히 주일 미사가 신앙에 더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고 응답한 비율(9.1)이 다른 연령층 신자 비율의 평균치(7.8)보다 높게 나타났다.
신앙 의식에도 영향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는 한국 교회 신자들의 신앙 의식 약화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의식과 실천’ 사이의 균열을 더욱 키웠다.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며 기도와 성경 공부, 봉사, 나눔에 대한 중요성은 더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 이를 실천할 의지는 더 멀어진 것이 드러났다. 이는 기부와 자선, 교무금, 헌금, 봉사시간의 축소로도 이어졌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그야말로 신앙에 있어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차이가 더욱 심화한 것이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통계 분석 보고서에서 “신자 간 접촉 빈도와 관계 밀도가 약화하며 실천적 측면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많은 신자가 코로나19 시기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심리적 어려움(49.1)을 꼽았다. 이어 경제적ㆍ대인적 어려움, 건강 문제 등을 걱정했다는 대답이 주를 이었다.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응답은 5번째였다.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는 결과는 교회에 큰 시사점을 준다.
이는 신앙생활 자체가 팬데믹 동안 주된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톨릭사목연구소는 “신앙생활에 중대한 장애 요소가 발생했음에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은 평소 신자들에게도 신앙생활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거나, 코로나 기간에 약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가톨릭평화방송 ‘TV 매일미사’ 등 비대면 미사가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평화신문DB
교회를 향한 신자들의 요구와 관심
가톨릭평화방송 ‘TV 매일미사’를 포함한 온라인ㆍ방송 미사 등이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크게 줄였다는 응답도 많았다. 코로나 시기 방송 미사에 매번 참여하거나, 한 달에 두세 번 이상 참여한 신자는 응답자의 절반(49.9)에 육박했다. 방송 미사에 참여한 이들 중 53.9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방송 미사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비대면 미사에 적극 참여했던 신자들은 이후 대면 미사에도 잘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사목연구소는 “방송ㆍ온라인 미사 관련 경험에서 실제 미사에서 얻는 하느님 현존과 은총, 거룩함, 공동체의 체험이 어느 정도 이뤄짐이 드러났다”며 “이러한 체험이 코로나19 이후 실제 미사에 참여하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 외에 더 다양한 신앙 콘텐츠를 원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특히 가톨릭 교리와 성지 순례, 기도ㆍ영성 강좌, 신앙 체험 나눔 등 교육ㆍ체험 관련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20대 청년들은 교회 음악과 미술, 건축 등 교회의 문화적 측면을 다루는 콘텐츠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 천주교회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의 코로나19 대응을 조사한 결과 ‘잘했다’(41.9)는 응답 비율이 ‘미흡하다’(33.7)는 응답보다 많았다. 또 절반 이상이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56.1)를 드러냈고, 교회에 대한 시선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도 31.7에 달했다.
한국 천주교가 가장 잘한 활동으로 ‘무료 급식 제공’(38.9), ‘지역민을 위한 성당 공간 개방’(31.8), ‘독거노인, 빈곤층 등을 돕는 활동’(31.1) 등 약자 보호ㆍ공공성 강화 활동 등이 꼽혔다. 다만 가톨릭사목연구소는 “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깝게(45.8) 나온 만큼 호감도가 개선됐다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탈권위,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선
설문조사 결과는 다양한 시사점 또한 남겼다. 먼저 ‘탈권위’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천주교의 이미지에 대해 ‘진정성 있고 거룩하며, 희생적이고, 따뜻하며 일치된 모습’으로 비친다고 답했다. 반면 교회가 부유하고, 폐쇄적, 위계적, 보수적이라는 이미지 역시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이미지는 코로나19 이후 신앙 회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미사에 참여하지 않는 신자들은 ‘일부 신자 위주의 본당 운영’과 ‘권위주의 문화’를 개선 사항으로 꼽았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교회 이미지를 ‘부유하고 폐쇄적이며 보수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가톨릭사목연구소는 “청년 사목에 있어 가난하고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교회의 모습을 중요한 성찰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시사한다”고 조언했다.
국민들은 천주교를 향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도움과 보호’, ‘사회적 갈등의 해소와 통합 노력’,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치유ㆍ돌봄 활동’ 등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회가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동시에 내적 쇄신도 함께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교회 내부의 문제 해결이 더 시급하다는 시선도 있다. 그중 ‘교회의 공동체성과 친교 회복’(30.5)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가장 컸다. ‘선교와 냉담 신자 회두 노력’(29.9),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사목적 분위기 조성’(27.3) 등의 의견도 많았다.
가톨릭사목연구소는 “코로나19 팬데믹 자체가 종교 일반에 가져온 위험도 있지만, 더욱 전향적으로 사회 안에서 교회의 역할을 고민하고, 이를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팬데믹 이후 더욱 시급해진 교회 내부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를 통해 밖으로 더욱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하여 성/연령/지역별 비례할당법에 따른 웹 패널 온라인 조사로 실시되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01p(천주교 신자), ±3.10p(비신자 국민)이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