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항상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동기 학대 경험이 어쩌면 성인기 자살 행동의 핵심 열쇠일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상담하면서 만난 자살시도자들은 대부분 심리적 외상으로 남은 어린 시절의 부정적 경험과 잊히지 않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주 언급합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이 불행했다고 모두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아동기 트라우마가 어떻게 성인기 자살로 연결되는지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러한 고민을 하던 순간, 문득 인간 내면에 영혼을 인질로 삼는 유괴범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모습은 어른인 자살시도자들을대하면서, 머릿속에는 유괴범에게 붙잡힌 채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하나의 표상(表象)으로 떠올랐습니다. 유괴범은 아이의 영혼을 옭아매고, 새롭고 다양한 정서적 경험, 긍정적 관계의 기회를 차단합니다. 유괴범은 시간의 흐름도, 망각도 허용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공포를 유발하며 가학적인 기억에 시달리게 합니다. 잔혹한 협박과 인질극의 절정에는, 여기서 풀려나려면 생명을 내놓는 것밖에는 없다는 속삭임이 있습니다.
실제로 아동기 학대 경험이 있고 성인기에 반복적인 자살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적 작용(영혼의 유괴범)이 한 사람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항상 어릴 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죽고 싶었죠. 벗어나고 싶고 이 지옥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싸울 때 제 얘기가 항상. 그러니까, 아 또 나 때문이구나.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된 거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래서 내가 없어지는 게 낫겠다.”
“밤만 되면 아빠가 술 마시고 술상을 엎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아빠가 맥주병도 깨고 막 다 죽여 버리겠다고 칼을 막 찾으려고 하는 그런 모습….”
“(평소에도) 벽에 막 돌에다가 머리를 박는 느낌…. 그냥 가만 있을 때…. 사람들 만나기 싫어요…. 그냥 싫어요…. 어렸을 적에…. (성폭행)을 당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행복하다는 생각 못 했기 때문에 계속 꿈을 잃고 목적을 잃고 행복하다는 생각도 못 하고…. 그렇다고 친구가 있던 것도 아니고 친구들이 다 무시하고”
“지금도 자살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필요 없는, 필요 없는 사람이잖아요. 있어도 있어봤자 필요 없는 사람.”
“항상 있어요, 그게. 없는 것 같지만 항상 밑에 깔려있어요. 죽음이라는 게, 뭔가 덮으면은 살짝 안 보이는 것뿐이지. 맨 밑에는 (죽음이) 깔려있어요.”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은 이들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너무도 허술한 것일 수 있다는 부정적 경험을 각인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 열등하고 흠결이 많은 존재라는 생각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은 영혼의 유괴범이 되어 이들의 삶을 인질로 삼고 계속해서 가해자가 없어도 스스로를 자학하게 만듭니다.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안전성이 무너진 경험은 이들로 하여금 세상 어디에서도 안전한 공간을 찾지 못하게 하고 항상 보호받지 못하고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확장시킵니다. 그리고 학대받던 어린 시절 생각대로 소멸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벗어날 궁리를 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제게 묻습니다.
“언젠간 행복해지겠죠…?”
황순찬 베드로 교수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