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작업하려고 흙을 만지는데 눈물이 났어요. ‘나, 다시 하네? 다시 작업하네?’라는 생각이 들었죠.” 서양화가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화백은 췌장암 완치 판정을 받은 후 작업을 재개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부활의 삶을 살게 됐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정 화백은 고통의 긴 터널을 지나며 부활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그 확신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삶에 대한 확신이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둔 3월 29일 정 화백을 만났다.
원망
3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그린 주일 복음 작품 전시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병원에서 당뇨 관계로 검진했는데, 의사로부터 “이상한 게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고 했죠. 그래서 정밀검진을 했는데 1기라고 하더라고요. 췌장암 1기.” 암 진단을 받고 1기라서 행운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췌장암 5년 내 생존자가 10명 중 1명 정도에 그치는 까닭이었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이 그렇겠지만, 처음에는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요. 저도 그랬고요. 주일 복음을 그린 작품들로 전시를 열려고 오프닝을 해야 하는 날 병원에 들어가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 된 거죠.” 정 화백은 무엇보다 하느님에 대한 원망이 컸다. “교회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살아왔는데, ‘그러면 나는 그동안 뭘 위해 달려온 거지?’라는 생각이 컸죠. 정말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라고요.” 정 화백은 그렇게 고통의 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고통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췌장의 꼬리 부분에 아주 작은 암들이 있는데 떼어내면 좋아질 거라고요. 그런데 췌장암이 아주 고약해서 항암치료를 12번이나 받았습니다.”
정 화백은 한 차례 수술을 받은 후 12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너무 힘이 들었어요. 약을 이틀 동안 맞아야 했는데 약이 독해서 혈관에 맞을 수는 없어 케모포트라고 하는 걸 가슴에다 삽입하고 나서 약을 맞았거든요. 약을 맞을 때는 정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항암치료는 병이 다시 재발하더라도 받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내내 식욕이 있을 리 만무했고 제대로 먹지 못하다 보니 기운도 차릴 수 없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가 심해 쓰레기통을 끌어안고 살 정도였다. 정 화백은 그렇게 6개월이 넘는 시간을 항암치료를 하며 보냈다.
회개
“‘이건 주님이 하실 일이고, 주님의 일이구나. 내가 하는 것이 절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가슴을 쳤어요. 그다음부터는 제가 작아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주님께서 그걸 깨닫게 하시려고 한 것 같아요. 그리고 고통의 끝에서 주님을 만났어요.”
정 화백은 “암 진단을 받고 묵상 중 ‘주님이 주인공이고 나는 주님의 손이 되었을 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며 모든 걸 내려놨다. 그리고 동시에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에 간절하게 다가갔다. “그동안 주님 일을 하면서 나를 먼저 내세웠던 건 아닌지, 주님께 온전히 다 드릴 수 있어야 하고 나는 더 작아져야 하는데 ‘내가 더 앞서 있었던 건 아닌가’하는 그런 자성이었어요.”
투병 중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정 화백을 회개로 이끌었다. 그는 투병 중 한국 정교회 초대 대교구장을 지낸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가 말기 암 투병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급한 마음에 트람바스 대주교를 찾아갔다. “대주교님이 책에 ‘하느님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 돼라’는 글을 써주시면서 제 손을 잡고 ‘아픔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면 그것이 순교’라고 말씀하셨죠. 아플 때 끙끙거리고 앓을 게 아니라 기쁘게 봉헌해야겠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리고 대주교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 품에 안기셨어요.”
한국순교복자수녀회 김경희 수녀도 정 화백을 움직였다. “수녀님께서 링거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 한 방울이 연옥 영혼을 구원한다고 생각하고 아픔을 참으면 기쁨으로 다가올 거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생각의 큰 변환점이 됐어요. 수녀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기도하니까 고통도 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정 화백을 일으켜 세운 건 무엇보다 가족이었다. “제가 아프니까 우리 가족이 저만 보고 살았어요. 먹는 것부터 운동하는 것까지 모든 걸 돌봐줬어요. 항암치료를 받을 때엔 가족의 사랑이 정말 보약과도 같았어요. 저는 진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가족을 잃고 살았더라고요. 귀한 걸 놓치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아프면서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을 다시 깨달았어요.”
정 화백이 암 진단을 받은 그 시기 부활 미사 후 전시장을 찾아 그를 위해 기도해 준 당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주교들, 같은 병실에서 서로 기도해주며 위로가 됐던 지인들은 모두 정 화백의 은인들이다.
부활
“항암치료가 끝나고 완치판정을 받은 후 다시 작업하려고 흙을 만지는데 눈물이 흘렀죠. 다시 작업할 수 있게 됐다는 기쁨의 눈물이었어요.”
정 화백은 요즘 오는 6월 완공해 새 성전으로 거듭날 전주교구 효자4동성당(주임 박상운 신부)에 봉헌할 십자가상과 14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고 있다.
정 화백과 박상운 신부의 인연은 박 신부가 여산성지 담당으로 있을 때 시작됐다. 여산성지에 봉헌할 성모상과 14처 등을 제작하며 인연을 쌓아갔다. 박 신부가 효자4동본당 주임으로 부임해 새 성전을 짓게 되면서도 정 화백은 기꺼이 함께하기로 했다.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작품을 통해 회개하고 부활의 길로 걸어갈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어요. 아프면서 너무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모든 초점은 거기에 맞췄어요.”
새로 건립되는 효자4동성당은 순교자기념성당이다.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라면 십자가상과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부활’이다. “제가 아프면서 우리가 주님을 참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너무 절절해서 아파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표현한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런데 고통 중에 계신 주님으로만 끝나면 안 되겠죠. 부활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부활의 기쁨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신자들이 퇴장할 때 볼 수 있도록 뒤쪽에 배치했죠. 부활의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이요.” 정 화백은 십자가상과 부활 작품뿐만 아니라, 순교자의 이야기를 담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과 14처도 봉헌할 예정이다.
“아프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삶이 바뀔 수는 없었을 겁니다. 큰 보물을 얻었어요. 숨 쉴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아주 작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 그게 축복인 것 같아요. 저는 부활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그래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다 나중에 주님께 기쁘게 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