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4월 16일로 9주기를 맞이한다. 세월호 참사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고 참사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지난해 10·29 참사라는 대형 사고가 다시 발생했다. 한국사회가 세월호 참사 같은 과오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9주기를 맞아 참사의 아픔에 동참하고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활동에 힘쓰고 있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조명한다.
■ 희생자 어머니들의 특별한 전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연대 활동을 펼쳐 온 수원교구 생명센터(원장 조원기 베드로 신부)는 지난 4월 1일부터 안산 4·16민주시민교육원 미래희망관 1층에서 ‘자유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유화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다. 4월 30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희생자 어머니들의 작품들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에는 김제훈(안토니오)군의 어머니 이지연(비비안나)씨, 문지성양의 어머니 안명미씨 등 10명의 어머니들이 유화 32점을 출품했다. 유가족들의 심리치유와 회복에 도움을 주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생명센터는 유가족들이 다양한 봉사활동과 미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유가족들은 처음에는 아픔을 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 아픔을 치유하고 승화시키며 떠나간 자녀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담아, 사회 곳곳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자연과 일상을 그려 나가고 있다.
희생자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한 유화 수업은 2016년부터 7년 동안 계속되면서 어머니들이 서로에게 위안을 줬다. 그동안 크고 작은 4차례 전시 경험이 있지만, 갤러리에서 정식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출품작들에는 먼저 떠난 자식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다시 볼 수 없는 자식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곧 자식의 이름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생명센터 원장 조원기(베드로) 신부는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자녀의 엄마로 불리기를 바란다”며 “수원교구 외에 타 교구들이 올해에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활동에 동참해 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만 생명센터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있는 안명미씨는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려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천주교 신자 어머니 소개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그림 작업실이 휴식과 위안의 공간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 “세월호를 기억해야 합니다”
팽목항 십자가와 수원교구 예비신학생이었던 박성호(임마누엘)군을 기리는 ‘임마누엘 경당’을 보존하고 있는 수원가톨릭대학교(총장 박찬호 필립보 신부)는 신학생 및 신학교 사제들과 함께 4월 15일 아침에 봉헌하는 미사에서 ‘세월호 기억식’을 마련했다. 수원가톨릭대 학생처장 정진만(안젤로) 신부는 “유가족들이 추모식보다 기억식이라는 이름이 더 좋겠다는 의견을 주셔서 그 원의를 존중하기로 했다”며 “사회에서는 희생자들을 이제 놓아주자는 분위기도 있지만,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아픔은 그분들만의 아픔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참사의 진상규명이 되지 않았고 책임 소재도 밝혀지지 않은 만큼 세월호를 기억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서 “세월호 희생자들이 살아 있다면 수원가톨릭대 신학생들에게 동년배나 형뻘 되는 나이여서 신학생들도 세월호의 아픔을 기억하기 원한다”고 설명했다. 수원가톨릭대는 기억식 이후에도 신학교 내 하상관에 부스를 설치해 세월호를 기억하는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춘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권오준 베네딕토 루치아노 신부)는 4월 12일 춘천 소양로성당에서 교구장 김주영(시몬) 주교 주례로 세월호 9주기 추모미사를 봉헌했다.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신정호(모세) 신부는 이날 미사 강론에서 “9년 전 그날 우리 중 누구라도 그 배에 올랐을 수 있었고, 앞으로 누가 그와 같은 상황을 맞을지 모른다”며 “세월호 희생자를 기억하고 함께 기도하는 마음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신부는 “충격적인 세월호 대참사에 대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지 않고, 반성도 부족했던 탓에 10·29 참사가 발생했다”고 비판하며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들 곁에서 그분들을 잊지 않고 함께 걷자”고 촉구했다.
한국교회는 생명센터가 4월 14일 안산 대학동성당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한 것을 비롯해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하성용 유스티노 신부),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양성일 시메온 신부),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재영 요한 세례자 신부) 등이 공동으로 4월 16일 오후 6시 서울시청 앞 이태원희생자분향소에서 추모미사를 봉헌하는 등 세월호 9주기를 기억하고 있다.
안명미씨도 “세월호 참사로 딸을 떠나보내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지만 반대로 냉대와 무관심을 받을 때가 많았다”면서 “올해 9주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는 세월호의 아픔에 동참하고 기억해 주는 일에 힘써 주시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인터뷰/ 수원교구 생명센터 원장 조원기 신부
“본질적 원인 성찰하고 변화 고민하자는 것”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3,4) 이 성경구절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분들이 우리보다 큰 죄가 있는 분들이 아닙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수원교구 생명센터 원장 조원기(베드로) 신부는 참사 9주기를 보내는 신자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억’이라고 강조했다.
조 신부는 참사 발생 9년이 지나면서 세월호를 점점 잊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 “내 옆에 사람 다리가 부러져도 내 손톱에 작은 가시 하나 박힌 것을 이유로 이웃의 고통을 잊는 것이 사람들의 속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인간의 나약함으로 과거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대형 사고를 겪었음에도 세월호 참사를 또 겪었고 지난해에는 10·29 참사가 발생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조 신부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지금 중요한 것은 잘못한 사람을 찾아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참사의 ‘본질적 원인’을 성찰하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10·29 참사 등 한국사회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들의 공통 원인은 안전에 대한 안이한 의식, 금전적 이익을 우선하는 인간의 욕심, 결국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이 조 신부의 지적이다. 조 신부는 “내가 조금 불편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 쌓일 때 세월호 참사 같은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게 된다”면서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아픔을 느끼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벗어나 타인을 위해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조 신부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냉담하거나 오히려 비난까지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유가족들 옆에서 그들의 아픔을 느껴 보았는지 묻게 된다”며 “유가족들은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