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잔나 베레타 몰라(Gianna Beretta Molla)는 어머니와 의사, 태아의 수호성인이다. 이탈리아의 소아과 의사로 네 자녀를 둔 잔나 베레타 몰라는 네 번째 임신 중 자궁에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당장 낙태를 하고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태중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치료를 거부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잔나 베레타 몰라의 시성식 강론에서 “그녀는 단순하지만 그 이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한 메신저였다”고 밝혔다. 태아를 지키기 위해 숭고한 모성애를 발휘한 성 잔나 베레타 몰라의 삶을 알아본다.
독실한 신자 가정에서 신앙심 키워
잔나는 1922년 10월 4일 이탈리아 마젠타에서 알베르토 베레타와 마리아 베레타의 13자녀 중 10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잔나의 부모는 재속 프란치스코회 회원으로 신앙심이 깊었고, 자녀들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며 이웃을 그리스도처럼 여기고 섬기도록 가르쳤다. 잔나의 오빠인 엔리코 베레타(1916~2001)는 카푸친 작은형제회 수도자로 브라질에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브라질의 비오 신부’로 불렸다. 엔리코 베레타는 현재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시성이 추진되고 있다.
태어난 지 일주일만인 10월 11일 마젠타의 성 마르티노 대성당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잔나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의 선물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신심 깊은 부모 아래에서 그리스도교식 교육을 받았다. 그 결과 잔나는 생명을 하느님에게 받은 위대한 선물로 받아들였으며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굳건한 믿음을 갖게 됐다. 또 기도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서도 확신했다.
잔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이탈리아의 평신도 신심단체인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의 청소년 활동가로 활발히 봉사했다. 또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으로 노인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데에도 충실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1949년 파비아대학에서 내과·외과의 자격을 취득한 잔나는 고향인 마젠타 인근 메세로에 병원을 열었다. 1952년에는 밀라노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이후 여성과 아기, 노인,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는 데 힘을 쏟았다.
결혼 성소를 받아들이며 성가정 꿈꿔
잔나는 의사로서의 삶을 인생의 사명으로 여기면서도 가톨릭 액션의 청년 활동가로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다. 특히 스키와 등산을 즐기며 삶의 기쁨을 느꼈고 피조물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느꼈다. 잔나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주시는 성소를 찾았고 결혼 성소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가정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자 했다.
잔나는 엔지니어였던 피에트로 몰라(Pietro Molla)와 약혼을 했고, 약혼 기간 동안 주님께서 주신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며 기뻐하고 행복해했다. 잔나는 1955년 자신이 유아세례를 받았던 성 마르티노 대성당에서 피에트로와 혼인성사로 맺어졌고 행복한 아내가 됐다. 이듬해 첫 아들인 피에르루이지를 낳았고, 1957년과 1959년 딸 마리올리나와 라우라도 낳았다. 잔나는 단순함과 평정심으로 어머니와 아내, 의사로서의 삶을 살며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1961년 9월 넷째 아이를 임신한 지 채 2개월이 되지 않았을 때, 잔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고통받았다. 태아와 함께 자궁에 종양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아 생명을 구하기 위한 숭고한 희생
의료진은 잔나에게 낙태를 하고 자궁을 절제하거나 자궁 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을 것을 권고했다. 잔나는 임신을 지속하는 것은 자신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태아의 생명을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결국 잔나는 태아의 생명을 해칠 수 있는 의료진의 치료 계획을 거부했다.
잔나는 하느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겼다. 그렇게 7개월을 더 임신 상태를 유지하며 종양으로 생기는 통증을 참아냈다. 엄마로서 그리고 의사로서 태아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출산이 임박했을 때 잔나는 담당의사에게 “태어날 아이와 나, 둘 중 한 사람밖에 살릴 수 없다면 주저하지 말고 아이를 살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1962년 4월 21일 잔나는 다행히도 네 번째 아이 잔나 에마누엘라를 건강하게 출산했다.
하지만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잔나는 출산 일주일 후인 4월 28일 복막패혈증으로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었다. 잔나는 죽는 순간에도 “예수님 사랑합니다. 사랑해요”라는 말을 계속했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잔나가 목숨을 바쳐 살린 딸 잔나 에마누엘라 몰라는 장성해 의사가 됐다.
사랑 실천을 위한 자기희생의 모범
1973년 9월 23일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삼종기도 훈화에서 잔나를 기억하며 “의식적인 희생”의 모범이라고 칭송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날 “밀라노대교구의 한 젊은 어머니는 의식적인 희생으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딸에게 생명을 내어줬다”면서 골고타 언덕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와 견주어 말하기도 했다.
잔나는 1994년 4월 4일 세계 가정의 해 행사 중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됐고, 2004년 5월 16일 시성됐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시성식 강론에서 “성 잔나 베레타 몰라는 하느님의 거룩한 사랑을 전한 메신저”라면서 잔나가 결혼 전 미래의 남편인 피에트로 몰라에게 남긴 편지를 인용했다. 편지에는 “사랑은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의 영혼 안에 심어주신 가장 아름다운 감성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잔나 베레타 몰라는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혼인성사 때 자신이 한 서약을 영웅적으로 충실하게 지켜냈다”면서 “목숨을 바쳐 보여준 잔나 베레타 몰라의 희생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고스란히 내어놓을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온전히 자아실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성 잔나 베레타 몰라는 모성애를 실천해 자신을 희생하고 태아를 살려 생명을 경시하는 죽음의 문화 속에 살아가는 오늘날 생명의 존엄성과 새로운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