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 하느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다다르기도 한다. 그저 부르심에 응답했을 뿐인데 고향땅을 떠나 먼 대한민국에까지 와서, 한국에서 설립된 수도회의 영성을 따라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성소자들을 만났다.
“저희가 한국 사람처럼 생겼다고요? 한국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네요!”
입담을 뽐내는 노 수안 투(요셉) 수사와 응오 비엣 코이(요셉) 수사는 한국 문화를 배우고 한국 순교자들의 삶을 내면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인고의 시간을 ‘한국물’이라 표현했다. “한국어뿐 아니라 창설자 방유룡 신부님의 영성을 이해하려 한자까지 공부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잠도 포기하며 언어와 씨름했었죠.”
두 사람은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총원장 양낙규 라파엘 신부)의 베트남 출신 유기서원자들이다. 동네 이웃이며 본당도 같았던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7년 전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뿌리 깊은 가톨릭 집안에 친척 여럿과 친형제가 성직의 길을 걷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점이라면 투 수사는 자칭 ‘동네 천사’이자 신앙의 모범이었고, 코이 수사는 반항기 있는 소년으로 성당 가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
학창 시절 어머니와 다투고 가출한 코이 수사는 머물 곳을 찾다 들어간 성당에서 한 사제를 만나고 마음을 뒤흔드는 따뜻한 감정을 느꼈다. ‘나도 저런 사제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성소의 씨앗을 떨어뜨렸다. 투 수사는 말레이시아에서 일하던 중 사제성소 식별을 위해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갑자기 날아든 초대장처럼 어느 날 같은 신부를 통해 복자회를 소개받고, 성소모임에 참여하며 한국 순교자들의 신심에 감화돼 입회했다. 코이 수사가 21살, 투 수사는 24살 때였다.
“하느님을 위해 피 흘린 한국 순교자들의 삶이 감동적이었어요. 오늘날에는 피 흘리는 순교가 없지만, 저희도 수도 생활을 통해 욕심이나 욕망 등 인간 본성을 포기하고 외부에서 오는 모든 고통과 모욕을 받아들이는 순교 정신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슬픔과 외국 수도생활이 실패로 돌아갈까 불안했지만, 하느님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신비로워요. 주변 사람이나 상황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부르심을 깨닫게 하시거든요. 인간의 의지와 힘을 넘어서는 방식으로요.”
두 사람은 온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복자회 형제들의 열정을 닮아가고, 기도와 수도 생활로 다듬어지고 있다. 코이 수사는 “자꾸만 욕심이 차오르는 제 마음에 하느님이 머무실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한 연습을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마음을 담아 수도성(姓)을 ‘공간’으로 정했다. 수도명은 ‘유대철 베드로’다. 투 수사의 수도성과 수도명은 각각 ‘경청’과 ‘이 가타리나’다. “주위 형제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제 고집을 버리고, 언제나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뜻”이라고 밝혔다. 각자 수도명으로 받은 한국 성인들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그들의 삶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입회로 끝은 아니다. 성소의 발견은 수도 생활 중에도 이어지고 있다. 투 수사는 순교 영성에 관한 연구를 꿈꾸고, 언젠가 베트남교회에서 선교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코이 수사는 자신이 받은 하느님 사랑을 이웃들, 특히 한국에서 소외되는 이주민에게 전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은 말했다. “이는 인간적 소망일 뿐, 어디에서 어떤 쓰임이 되든 처음 불러주신 그때처럼 하느님 뜻에 순명할 것입니다. 저희 발걸음을 이끄는 건 오로지 하느님뿐입니다.”
염지유 기자 gu@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