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생활] (17) 준비는 또 다른 축복
부활, 성탄, 명절, 생신처럼 특별한 날의 경우에만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것이 마치 가족에게 연연해 하지 않는 수도자의 삶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소임을 하면서, 노인들의 삶을 보며 살아 계실 때 자주 연락드리며 안부를 여쭙고 보살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결심을 세웠습니다.
전화를 드릴 때마다 오고 가는 대화는 항상 똑같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건강은 어떠세요?”하고 안부를 묻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저와는 달리 어머니는 성당에서 만나는 분들의 안부를 전해주고, 미사 때 들었던 신부님 강론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거실에 가득한 화분 중에서 어떤 꽃이 예쁘게 피었는지 등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십니다.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상의 모든 이야기를 듣기 위해 큰 결심을 하고 수화기를 들곤 합니다. 의무감에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전화 드리는 제 마음과 달리 어머니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효녀 딸이라고 항상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안부 차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성당 갔다가 오는 길에 병원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가족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혼자 다녀오셨냐는 질문에 “조금이라도 정신이 또렷할 때 기계의 도움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내 의사를 분명히 해 두고 싶었다”며 “임종의 때 자식들이 결정하기 어려운 순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작성하고 나니 날아갈 듯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며 “평상시에 본인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 두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을 의미합니다. ‘연명치료’는 현대의학으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입니다.
서울대 의과대학 허대석 명예교수는 대한의사협회지에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임종 전 마지막 2~3개월을 가족들과 생을 마무리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보다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관행이 그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중환자실 병상이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중환자실 자원은 부족합니다. 급성 질환으로 위중한 상태지만, 위기를 넘기면 정상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환자가 자리가 없어서 입실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지막 순간 중환자실에서 보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만큼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잘 마무리하고 싶을 것입니다.
죽음은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입니다. 태어남이 있으니 죽음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거나 지금은 벌어지지 않는 먼 이야기로 밀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을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는 스스로 준비할 수 없으나 착한 죽음을 위한 준비는 스스로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축복된 기회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