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5)사제의 독신과 목사의 혼인
한 사제가 수단과 로만 칼라를 착용한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신부는 독신을 지키고 목사는 왜 혼인을 하나요?
성직자와 목회자의 혼인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민감한 주제입니다. 가톨릭교회가 아닌 정교회와 성공회, 개신교 교단에서는 목회자의 혼인을 허용합니다. 정교회와 성공회의 신부나 개신교 목사 가운데 독신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교회 신부는 보제(가톨릭의 부제) 서품 이전에 혼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서품 이후에는 혼인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님의 모범과 말씀(마태 19,12 참조)에 따라 사제 독신제가 시작되었고, 이는 바오로 사도의 모범과 권고(1코린 7,32-35 참조)에도 근거합니다. 사제 독신제에 대한 전통은 300년경 엘비라 지역 공의회(규정 33조)에서 시작되어 이리베리다노 지역 공의회와 446년의 카르타고 공의회, 그리고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재확인되었습니다. 그 뒤 1917년 보편 교회법에 사제 독신제가 명시되었습니다.
천주교 신부가 독신을 지키는 이유는 혈연이나 가족에 매이지 않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 교회의 일꾼으로서 하느님 백성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혼인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로 서품되는 것은 개신교 목사 안수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성품성사는 축성이나 성사의 성격을 지닌 종교적이고 전례적인 행위입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오로지 당신에게서 나올 수 있는 ‘거룩한 권한’을 교회를 통해서 행사하도록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품성사를 축성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를 위하여 선별하시어 권한을 부여하시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38항 참조)
성품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표징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제의 독신은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독신의 표징을 통하여 하느님 백성인 교회에 완전한 헌신과 자기 봉헌의 의미를 드러내는 새로운 삶의 표징이기도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79항 참조)
반면에 개신교의 목사는, 16세기 종교 개혁 이후 성직 제도를 부정하고 모든 신자가 동일한 사제직을 수행한다는 ‘만인 사제설’ 또는 ‘만인 제사장설’에 따라 신앙 공동체의 필요를 위한 직무를 수행합니다. 따라서 목사의 혼인은 평신도의 혼인 생활의 품위와 같은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평신도와 동일한 혼인의 삶의 형태를 통하여, 신자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공감하고 가정을 이루고 돌보면서 동시에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는 이중의 과제를 수행합니다.
신부가 착용하는 로만 칼라(성직 복장)를 목사가 해도 되나요?
가톨릭교회에서 로만 칼라는 수단과 함께 천주교 성직자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성직자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의 목 부분에 두르는 흰색의 로만 칼라는 혼인을 하지 않고 정결을 지킨다는 독신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또한 로만 칼라는 주교에게 순종한다는 뜻과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가톨릭교회에 순종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로만 칼라는 8세기 이후 나라별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로만 칼라는 교황이 거주하는 로마의 양식으로, 16~17세기부터 로만 칼라로 규정되었습니다. 1565년부터 1582년까지 개최된 밀라노관구 공의회에서 성직자에게 초기 형태의 로만 칼라를 착용하도록 하였고, 17세기부터 가톨릭국가들에서 성직자가 관행으로 로만 칼라를 착용하게 됐습니다.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1724년 12월 20일 교령으로 로마의 성직자에게 로만 칼라의 착용을 의무화하였고, 1725년에는 전 세계 성직자에게 이를 준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의 하나로 성직자 복장을 간소화하면서 개량된 로만 칼라를 성직자가 착용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로만 칼라는 성직자의 권위나 명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섬김과 봉사의 표징이고, 성직자의 신원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현재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개신교 목회자가 개량된 로만 칼라를 착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루터 교회는 18세기부터 공직자가 착용하던 칼라를 간소화하여 목회자 신분을 드러내는 복장으로 착용했습니다. 또한 감리교 감독과 성공회 주교도 로만 칼라를 착용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교단과 상관없이 목회자 신분을 드러내고자 목사가 로만 칼라를 착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일부 개신교에서 로만 칼라가 개신교 목회자 복장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지만, 로만 칼라가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을 지닌 성직자 복장이라는 점은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입니다. 오히려 일부 개신교에서 가톨릭교회의 성직자 복장을 받아들여 현대적 셔츠 형태로 개량해서 착용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