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정부가 최근 69시간 근무제 도입을 언급했을 때 노동계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직장인이 반대와 우려를 했습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급격한 근무시간 확대는 세계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이지요.
가톨릭교회는 노동과 휴식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가 2023년도 노동절 담화에서 강조한 키워드는 휴식입니다.
이힘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군 로봇 영상입니다.
물건을 나르는 로봇이 속도가 줄어드는 것 같더니 곧 쓰러지고 맙니다.
과로로 쓰러지는 로봇이 사람같아 안쓰럽습니다.
현재 적용된 하루 8시간 근무제는 오랜 투쟁의 결과입니다.
133년 전인 1890년 5월 1일, 전 세계의 노동자가 하루 8시간 노동을 주장하면서 거리로 나섰습니다.
매일 12시간에서 1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이 건강을 크게 해치고 결국 고용불안과 임금 하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듬해인 1891년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고 비인간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과중한 노동을 비판했습니다.
교회는 적절한 노동 시간과 휴식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끊임없이 옹호해왔습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올해 노동절 담화에서 “노동 시간 단축과 그 정당성은 ‘휴식’에 관한 성경 가르침에서 시작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일하는 모든 존재에게 ‘휴식’은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신명기에는 “종과 이방인 심지어 가축도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휴식을 취할 권리가 있다”(5장 14절 참조)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노동하는 인간에게 휴식은 하느님의 선물이자 누구나 동등하게 누려야 하는 권리라는 것이 교회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사목헌장」에는 가정과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휴식과 여가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사실은 노동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라 자기 자신과 공동체의 완성을 위해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김 주교는 담화에서 “이러한 완성은 노동과 그 결과만이 아니라 휴식과 여가 가운데 예배와 봉사, 가족과 사회 공동체와 일치함으로써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인간은 노동을 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하느님을 닮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김 주교는 ‘노동 조건의 결정’에 대해서도 지적했습니다.
노동조건은 노사의 자율적 합의가 아니라 ‘사회 정의의 기준’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은 노동자에게 정당한 휴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휴식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더라도 노동자가 살아남을 정도가 아니라, 가족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임금을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아울러 김 주교는 인간을 노동의 노예로 만드는 것을 강요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구조도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휴식과 노동의 조화를 통해 가족과 이웃, 사회를 돌봄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사업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CPBC 이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