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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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의 별 임형주, 나눔의 빛이 되겠습니다

[창간 35주년 특집] 데뷔 25주년 맞은 성악가 임형주(대건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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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데뷔 25주년 맞은 팝페라 테너 임형주. 디지엔콤 제공


“많은 분이 저를 40대라고 생각하세요. 오래전부터 봤으니까. 좀 억울하죠.(웃음)”

올해 데뷔 25주년이라고 하니 오해할 만하지 않은가. 기자도 인터뷰에 앞서 그의 나이를 셈해 보았다. 웬만한 아이돌보다 이른 10대 초반에 데뷔했으니, 창간 35주년을 맞은 가톨릭평화신문과 또래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MC로 어느덧 2년

라디오 진행을 앞두고 성악가 임형주(대건 안드레아)씨를 만났다. 20여 년을 무대에 서왔으니 ‘라이브’ 상황이 낯설지는 않겠지만, 생방송을 앞두고 꽤 긴 시간 인터뷰까지 하는 걸 보면 이제 방송도 제법 익숙해졌나 보다.

“지난 4월 24일이 ‘임형주의 너에게 주는 노래’를 진행한 지 2년 되는 날이었어요. 이제는 좀 적응이 돼서 편한데, 방송 5분 전에는 오히려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해요. 오프닝 멘트에서 조금이라도 매끄럽지 못하면 그날 방송은 전체적으로 아쉽더라고요.”

공연이나 방송이나 ‘날것’의 매력은 비슷하지만, 수많은 관객 앞에서 자신의 무대를 선보이는 공연과 달리, 라디오 방송은 보이지 않는 다수의 청취자와 소통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맞아요. 종교 매체라서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마치 연애하는 기분이에요.(웃음) 여자 친구 있을 때 밤에 통화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일과도 얘기하고, 고민도 말하고, 조언도 듣고···. 그러다 보면 미안한 마음에 노래를 해주곤 했는데, 라디오 방송이 그런 느낌이더라고요.”

하지만 국내외 다양한 스케줄이 많은 그에게 매일 정해진 장소에서 두 시간의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이른바 ‘주5일 출근’이 아니겠나.

“제가 저녁형 인간이라서 낮에 방송할 때는 밤새고 온 적도 많아요.(웃음) 사실 엔데믹 단계로 접어들면서 일정이 많아지다 보니, 괜히 누가 될까 봐 하차 의사를 밝히기도 했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잡아주시더라고요. 이렇게 오랫동안 방송할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총이고, 이제는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것 같고요.”

 
국내 데뷔 25주년, 국제 데뷔 20주년 맞은 성악가 임형주. 디지엔콤 제공

2년여 전 가톨릭으로 개종 후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진행을 맡게 된 임형주씨. 디지엔콤 제공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

임형주씨가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MC가 된 것은 돌이켜 보면 ‘특별한 부르심’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음악 활동에 제약이 따르자 그 기회에 가톨릭 교리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개신교 신자였다. 그저 클래식의 기원은 교회 음악이고, 바흐와 헨델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곡을 썼는지 탐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소개받은 사제가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인 조정래 신부였고, 그 인연은 세례성사와 방송 진행으로 이어졌다.

“개종의 뜻이 있었던 건 아닌데, 나름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해요. 개신교 신자일 때도 큰집, 작은집이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오랜 인연도 있었고, 특히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면서 가톨릭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고요. 천주교는 어떤 신비로움이 있는데, 미사 드릴 때 매우 성스러운 분위기도 좋아해요.”

사람은 저마다 탈렌트가 있다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으니, 종교를 떠나 신의 존재와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했을 것이다.

“맞아요, 요즘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감사’, ‘기적’, 그리고 ‘운명’이더라고요. 어려서 노래를 시작한 제가 이렇게 25년 동안 노래할 줄 몰랐고, 음반 누적 판매량이 100만 장을 기록할지도 몰랐고, 제 프로필을 보면 최초, 최연소라는 수식어도 많이 붙거든요. 당시에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제게 기적 같은 일이 많았고 그만큼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특별한 재능과 성과에 감사만 한 것은 아니다. 눈에 띄는 이렇다 할 슬럼프는 없었지만, 그러한 매일, 매 순간이 그에게는 고난의 길이기도 했다.

“‘왜 나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평범하게 또래의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갈증도 많고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거든요. 24시간 보이지 않는 카메라가 나를 찍고 있는 느낌이랄까. 음악가 임형주로서는 감사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소년 청년 임형주는 희생해야 할 것도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매일의 파도를 잠재운 것도, 모든 것을 감사하게 여긴 것도 결국은 신앙의 힘이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음악도가 유명해지길 바라는데, 재능을 인정받고 유명해지는 사람은 10도 안 되거든요. 저는 감사할 수밖에 없죠. 하느님께 그런 기도를 많이 했어요. 부족한 저에게 이런 과분한 재능을 주셨으니까 하느님이 책임지셔야 한다고.(웃음) 그리고 당장 내일이라도 제 목소리가 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신이 주신 재능이니까 다시 가져가셔도 할 말이 없죠. 그 순간까지 잘 지켜서 많은 분과 나누는 게 제 소명이 아닐까 싶어요.”



또 다른 25년을 꿈꾸며

매일 라디오로 들었던 임형주씨의 목소리는 올해 공연과 음반으로도 들을 수 있다. 먼저 국내 데뷔 25주년, 국제 데뷔 20주년을 맞아 14일 오후 7시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기념 콘서트 ‘리빙 히스토리(Living History)’를 개최한다. 코리안 내셔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뉴 위즈덤 하모니와 함께 클래식에서 팝, 재즈, 뮤지컬을 망라한 다채로운 음악을 선사한다. 오랜 기간 대한적십자사와 유네스코 친선대사, 사랑의열매 홍보대사 등으로 활약하며 각종 모금 운동과 구호활동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그는 이번 공연의 수익금 중 일부도 불우이웃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또 29일에는 몽골 살레시오수녀회가 설립한 노밍요스 중등학교 건립 후원 음악회에 참여하고, 9월에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여름에는 통산 스무 번째 정규 앨범 ‘Life On Air’를 발표할 계획이다.

“우리 인생은 생방송처럼 계속 흘러가잖아요. 자신이 리드하지 않으면 그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이제 ‘어느 나라의 어느 공연장에 서고 싶다’는 욕심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어요. 또 한편으로 앞으로 25년간은 제 개인 음악 활동은 많이 줄이고, 사회적인 활동이나 후학 양성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싶어요.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제가 가진 것을 전하면서 사람들을 돕고 위로를 주는 일에 좀 더 참여하려고 해요.”

세례를 받은 뒤 매주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그는 개인적인 신앙생활에도 좀 더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지난 2년간 심리적으로 굉장히 안정된 것 같아요. 매일 그분의 존재를 느끼고, 지쳐 있을 때도 어딘가에서 저를 바라보고 계신다는 생각에 조금 비뚤어지려다가도 정자세로 돌아오게 돼요. 아직 가톨릭에 대해 알아가고 있고, 교우 관계를 맺는 것도 쑥스러워서 온라인으로 드리고 있는데, 본당에서 미사 참여하는 게 새로운 목표이기도 해요. 견진성사도 받아야 하고요.”

35주년을 맞은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에도 축하 메시지를 건넸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방송과 신문이 함께 운영되는 가톨릭 매체라고 들었는데, 그만큼 우리 신자들에게는 뜻깊고 소중한 매체니까 양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많은 분이 후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또 다른 35년, 더 나아가 350주년까지 오랫동안 사랑받길 바랍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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