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편지] 캄보디아에서 윤대호 신부 (1)
깜퐁참 지목구청에서 열린 교회음악 세미나에서 강연하는 윤대호 신부.
19세기 프랑스의 작곡가 샤를 구노(Charles F. Gounod, 1818~1893)는 ‘아베 마리아 (Ave Maria)’라는 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선율에 붙은 성모송의 은혜로운 기도문은 세기와 대륙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에게도 살아 숨 쉬는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 신앙심도 깊었던 구노는 한때 신학생이었다. 그리고 동시대에 그와 함께 수학했던 사제들 중 몇몇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 사제가 되어 머나먼 조선땅으로 파견되었고, 순교하였다. 구노는 그들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순교의 신비와 영광을 ‘순교자 기념일’(L`anniversaire Des Martyrs)이라는 곡을 통해 기렸으며, 이 곡은 가톨릭 성가 284번 ‘무궁무진세에’로 번역되어 우리 한국 교회에서도 불리고 있다.
구노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해의 고통과 순교자들의 피 위에 굳건히 일어선 21세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자신이 만든 곡이 오늘날 이 한국 땅에서 연주되고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구노와 그의 교회음악곡들을 생각하며, 나는 기도의 수단, 그리고 소통의 수단으로서 음악이 지니고 있는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
캄보디아의 문화, 그리고 현재
캄보디아 전례에 있어 교회음악은 ‘두 가지 이유’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첫째는 전체 신자의 70에 해당하는 베트남계 신자들 중 많은 수가 캄보디아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이고, 둘째로 30에 해당하는 캄보디아계 신자들 중에서도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베트남계 신자들의 경우 대부분 모태신앙을 가진 남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이주해 온 사람들과 베트남전 당시에 피난 온 사람들이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예로부터 전쟁과 식민지배 등으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캄보디아 사람들은 베트남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도 캄보디아에 살고는 있지만, 캄보디아 문화 안에 흡수되어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베트남계 신자들 중 캄보디아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간단한 소통만 가능하다.
캄보디아계 신자들은 물론 캄보디아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크메르루주 집권기에 지식인층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학살되었고, 이후 내전이 끝날 때까지 제대로 된 교육시스템이 운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맹률이 매우 높다. 특히 1970~1990년대 초에 태어난 이들은 앉아서 수업을 받거나, 읽고 쓰는 훈련을 했다거나, 또는 무언가를 열심히 암기하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어, 교리를 가르치거나 기도문을 외우게 할 때 어려움이 많다.
캄보디아 프놈펜대목구 메콩강지구 사목센터에서 메콩강지구 성가대원들에게 미사곡 교육을 하는 윤대호 신부.
윤대호 신부가 깜뽕참지목구청에서 마련한 교회음악 세미나에서 성가대 리더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음악은 최고의 소통
아무튼, 말을 못하는 신자들과 글을 못 읽는 신자들을 모아 함께 미사를 드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음악은 최고의 수단이 된다. 마치 영어는 못해도 팝송은 외워서 부를 수 있듯이, 또 시를 외워서 낭송하기는 어려워도 노래로 부르는 것은 쉬운 것처럼, 캄보디아 교회는 성가를 통해 신자들이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노력해왔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우리가 부르는 ‘자비송’, ‘대영광송’ 같은 전통적인 미사곡은 물론이고, 미사 중 신자들이 외워야 하는 대부분의 기도문과 응답들 또한 캄보디아 교회에서는 노래로 부르고 있고, 이 곡들도 모두 미사곡으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미사 초반의 공동고백 1양식인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는 물론, 영성체 전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까지 모두 노래로 하고 있다.
미사곡 보급과 교육 시작
2015년 캄보디아에 파견되었을 때까지만 해도 캄보디아 교회는 개정 전의 미사경본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시 새 미사경본 번역 작업은 어느 정도 끝나있었지만, 새롭게 바뀐 단어들과 문장의 음절 수를 세어보니, 기존 미사곡 멜로디에는 도저히 대입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한국 교회를 비롯해 이미 여러 나라에서 새 번역 미사경본을 도입한 시기였기에, 캄보디아 교회도 조만간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새 미사경본이 도입된다면 당장 부를 미사곡이 없게 될 처지였다. 새로운 단어들에 익숙해질 때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나는 2016년부터 새로운 미사곡을 작곡하고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총 12곡의 미사곡을 한 세트로 하여 완성했다. 그리하여 새 미사경본 사용을 선포할 시기에 맞춰 보급과 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뻤다.
새 노래가 연습되고 불리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상대로 한동안 혼돈의 시기도 겪었다. 특히 대영광송의 경우, 노래 없이 바치는 게 어려워 사제 혼자 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 이전에 부르던 성가를 그냥 계속 부르는 성당들도 있었다. 이에 나는 새 미사곡들을 홍보하고, 출장 교육도 다녔다. 영상과 음원을 배포하는 작은 노력이 닿은 것일까. 점차 새 미사곡으로 노래하는 성당이 늘어났다. 특히 내가 작곡한 미사곡들이 새 미사경본에 맞춰 가장 먼저 발표된 것이었기에, 이후에 나온 미사곡들에 비해서도 더 많이 알려지게 됐다. 결과적으로 현재 캄보디아 교회의 공식행사에서 사용되는 미사곡이 됐다.
필자가 캄보디아 깜뽕참지목구 성가대 리더들을 대상으로 교회음악 세미나를 마련한 후 지목구청 앞에서 신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대호 신부 제공
모두가 한목소리로
미사곡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모두가 함께 한목소리로 부를 수 있는 곡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사곡은 오로지 미사만을 위해 존재하는 음악이며, 미사는 공동체가 바치는 경신례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기도이며 공동체와 하느님이 소통하는 수단이다. 그래서 함께 부를 수 있도록 분명한 박자와 정확한 음으로 이뤄진 곡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서양음악을 공부한 한국인이 만든 곡이라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우리 캄보디아 신자분들은 많이 좋아하는데, 몇몇 선교사들 가운데에는 토착화된 미사곡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있다.
사실 기존에 불렀던 미사곡들은 캄보디아와 비슷한 감성의 태국 미사곡을 번안한 곡들과 음악교육을 받은 캄보디아인 신자가 만든 곡들이었다. 그래서 캄보디아의 전통음악 또는 전통가요와 비슷한 감성이 있었다. 그러나 짧은 곡 안에서도 변박자가 많고, 불규칙적으로 소리를 늘이거나 꺾는 형태의 곡들이 대부분이다. 지휘자의 철저한 지휘 하에 잘 훈련된 성가대라면 모를까. 공동체가 미사 중에 다 함께 한목소리로 부르기는 매우 어렵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 사제들과 수도자들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아직 도전을 망설이고 있다. 미사의 전례적 의미를 고려하면서 어떻게 캄보디아적인 성가를 만들 수 있을까? 아마도 평생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것 같다.
글을 시작하며 구노를 언급했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도 자신의 곡으로 함께 찬양에 동참하고 있다. 욕심이기는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도 이런 것이다. 먼 훗날 지금보다 더 많이 성장한 캄보디아 교회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 미래의 교우들이 미사를 드릴 때, 내가 남긴 성가들로 그들과 함께하고 싶다. 그렇게 그들 곁에 머물고 싶다.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6-601-211961
예금주 : 재단법인 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윤대호 신부 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지부 프놈펜대목구 지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