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교우들에게 나는 ‘음악 하는 신부’로 알려져 있다. 이미 많은 교우가 내가 만든 성가를 부르고 있고, 여러 성당에서 출장 성가교육이나 교회음악 세미나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내가 우리 본당 청년들이나 아이들에게 악기 레슨이나 음악이론 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 계신 교우분들도 내가 그럴 것이라 짐작하시며, 내가 있는 본당에 실력 좋은 성가대나 오케스트라, 또는 밴드가 양성되고 있는지 물어보시곤 한다. 그러나 사실, 본당에서 나는 일반적인 성가 교육 외에는 특별한 음악교육을 하지 않는다. 물론 앞으로 할 계획도 없다.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
어릴 때부터 레슨과 독학으로 여러 악기를 익혀왔고, 오랜 시간 음악을 해왔다. 누구보다 음악을 좋아하고, 더 잘하고 싶은 열정도 있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꾸준해야 하고,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데, 선교 사제에게 그만큼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만약 내가 한 본당에서 임기 제약 없이 계속 사목활동을 할 수 있다면 또 얘기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세 곳의 본당이 있고, 교회음악 제작과 신학교 강의라는 임무들도 있다. 게다가 때가 되면 주교님의 인사 명령에 따라 임지도 바뀐다. 그런 이유로 본당에서는 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빠지는 순간, 진행하던 모든 일이 멈추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후임자로 올 사제들은 또 얼마나 난감할까….
물론 청년들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의 기회를 주자는 차원에서, 아주 가볍게 악기를 가르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아이들이 나타난다면, 게다가 재능있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언급했듯 나는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고, 악기를 배우려면 왕복 4시간이 걸리는 프놈펜 시내까지 나가야 하는데, 우리 마을 사람 중 자녀의 취미활동을 위해 수업료와 교통비를 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다. 결국 무언가를 가볍게 시작한다는 것도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사진 교육, 뜨거운 반응
지난 몇 년간, 교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청년들과 아이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 것, 특히 내가 없어도 계속 진행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형태의 선교 프로젝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음악교육처럼 결과물을 보기까지 오래 걸리는 것보다는, 누구나 쉽게 접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고, 평소에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두 가지 프로젝트를 기획해 최근 시작했는데, 하나는 ‘사진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영정사진 찍어드리기’다.
캄보디아에서는 요즘 저렴한 중국산 스마트폰과 보급형 스마트폰, 중고폰 유통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SNS를 사용하는데, 일상 공유부터 광고, 장사까지 다양하게 이용한다. 이제는 잘 알려진 장소에 방문해 인증사진을 찍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돼버렸고, 더 예쁜 사진을 찍으려고 다양한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즉, 스마트폰 보급과 SNS의 유행이 사진 찍는 것을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게 한 것이다.
‘사진교육’을 해보자는 생각도 여기에서 기인했다. 사진을 더 예쁘게 찍고 싶어하는 우리 아이들이 그 관심과 재미를 계속 이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잘하면 즐거우니까, 아이들이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가르쳐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1년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참 좋다.
교육은 물론 DSLR 카메라로 한다. 사진 찍는 원리를 이해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이런 카메라를 계속 다루다 보면 혹시 우리 아이들 중에 사진작가를 꿈꾸는 이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셔터를 눌렀을 때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진동, 그리고 DSLR이 만들어내는 좋은 결과물들은, 처음 사진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부담 없이 쓰도록 보급형 DSLR 한 대를 본당 교육용으로 갖다 놓았다.
교육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별도의 교육시간이나 커리큘럼 같은 것은 없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면서 감각도 있는 아이들에게, 1~2주마다 돌아가며 본당 카메라를 쓰도록 내어주는 게 전부다. 물론 조리개나 셔터스피드, 포커스와 거리 등에 대해 설명해주고, 설정 값마다 사진 결과물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는 과정은 필수다. 이후에는 아이들이 찍어온 사진을 함께 보며 분석하고, 함께 보정작업을 하는 것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이렇게 1년간 여러 청소년에게 사진을 가르쳤는데, 그중 네 명은 사진 찍기를 참 좋아하고 감각도 괜찮다. 이젠 자기들끼리 품평도 하고 다른 친구들을 가르치기까지 한다. 내가 많은 것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최소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또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는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 영정 사진
두 번째 프로젝트인 ‘영정사진 찍어드리기’는 사실 오래전부터 생각만 해왔던 것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유가족들은 영정사진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따로 찍어 놓은 증명사진이나 저장해놓은 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겨우 스마트폰에 있는 작은 크기의 사진을 찾아 읍내 사진관에서 뽑아오는데, 화질도 안 좋고 편집도 어색하게 돼 있다. 안 그래도 돌아가신 어르신 생각에 마음이 착잡한데, 흐릿한 영정사진을 보고 있자면 더 슬프고 우울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드리고 본당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돌아가셨을 때 직접 뽑아 유가족께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어르신들께서 이 일을 불쾌하게 여길지 모른다는 걱정에, 이런 생각을 입 밖에 꺼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사진 전용 프린터를 구입하고, 증명사진에 맞는 화각의 렌즈와 조명기구들을 하나씩 마련해왔다. 프로젝트라고 거창하게 이름은 붙였지만, 그저 개인 용돈으로 진행하는 일인만큼 장비 마련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년 10월, 본당에서 가정의 날 행사로 모든 신자의 가족사진을 찍어드리고, 한 주 뒤에 큰 사이즈로 출력해 나눠드렸는데, 그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영정사진에 대한 내 생각을 조심스레 나눠보았다.
“오늘 나눠드린 사진들 마음에 드세요? 예쁘게 나왔죠? 정말 이런 얘기 하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한데요, 전 아~주 나중에 우리 아버님, 어머님들 장례식 때 쓸 사진도 이렇게 예뻤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분위기가 싸늘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모두가 박수를 치고 웃으며 “좋습니다!”라고 대답해주셨다. 아마 그분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생각한 내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기에 기쁘게 동의해주신 것 같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내가 혼자 진행하는 일이지만, 어르신들이 그렇게 많이 계시진 않기에 짧은 임기라 해도 충분히 마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없더라도 본당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은 누구나 가져갈 수 있기에,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나는 캄보디아에서 ‘음악 하는 신부’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 본당 교우들에게만큼은 ‘사진 찍는 신부’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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