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수녀들이 예수 성심 대축일을 앞두고 성체를 현시한 가운데 성무일도를 하고 있다.
관계 안에서 얻어지는 지혜보다 스마트폰 속 정보를 더 신뢰하는 현대인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느님과 종교의 의미조차 상대적 기준으로 바라보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급변해도 인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구도심’(求道心)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갈망, 절대자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 두려움, 그리고 평화. 이러한 과정을 더 깊은 차원에서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이들이 있다. 세상에 드러나진 않지만, 하느님을 중심으로 이뤄진 작은 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봉쇄수도회 수도자들이다.
6월 예수 성심 성월을 맞아 ‘예수 성심’을 살아가고 전파하는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가 봉쇄된 수도원 문을 활짝 열었다.
예수성심상과 수도회 전경.
봉쇄, 진정한 자유를 위하여
경기도 연천 산기슭에 위치한 성모마리아방문봉쇄수녀회 한국분원(원장 루스 마리아 수녀)을 향해 올라가면서 세상의 소음과 점점 멀어질 즈음, 예수 성심상이 두 팔 벌려 맞이한다. 하지만 ‘봉쇄’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때문인지 벨을 누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엄숙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순간, 해맑은 미소로 문을 열어 주는 원장 루스 마리아 수녀를 보자마자 봉쇄의 담이 허물어지듯 마음의 벽이 금세 사라졌다.
봉쇄수도원 특성상 칸막이를 두고 소통해야 했지만, 거리감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수녀들의 표정은 수도자의 신원인 지상에서 하늘나라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안에만 있으면 답답하지 않으세요?”(기자)
“저희가 보기에는 세상 사람들이 더 답답해 보이는걸요. 이곳도 작은 사회예요. 다만 하느님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게 다르지요.”(수녀)
봉쇄구역 안과 밖을 구분하는 창살 하나뿐. 그 사이로 외출도 못 하고, 그 흔한 휴대전화도 없는 상황을 물어본 일차원적인 질문에 대한대화가 오갔다. “정말 자유롭습니다.”
예수 성심, 사랑에 응답하며
새벽 5시. 수녀들은 종소리에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와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다. 미사와 성체조배, 삼시경, 육시경, 구시경, 독서기도, 끝기도까지 기도가 하루의 전부일 만큼 기도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 사이 영적 독서와 묵상 시간도 갖는다.
특히 방문수녀회의 가장 중요한 영성은 ‘예수 성심’이다. 방문수녀회 소속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1647~1690)는 네 번에 걸친 환시 중에 예수 성심의 발현을 체험했고, 예수 성심에 대한 메시지를 받았다. 그 환시에서 예수님은 성녀에게 예수 성심 축일을 제정하고 예수 성심 금요일과 성시간을 장려하라는 임무를 줬다. 예수회 회원들의 노력으로 예수 성심은 교회의 공적 신심으로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6월 예수 성심 성월은 프랑스 우아조(Osieaux) 수도원과 여러 지역에서 신심 행사로 시작됐으며, 1873년 비오 9세 교황이 대사 반포와 동시에 정식 인가했다. 1863년에는 ‘예수 성심 수호대’가 결성돼 수녀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많은 신자들이 영적으로 예수 성심께 위로를 드리고 있다.
전 세계 방문수녀회 수녀들은 성녀에게 전해진 메시지를 이어받아 매달 첫 금요일에 성체조배를 하고, 매일 정해진 기도 시간 외에 1시간 30분씩 묵상한다. 또 예수 성심 대축일을 앞두고는 9일 기도를 시작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체를 현시하고 기도한다. 예수 성심 성월에는 30일간 각기 다른 묵상 주제를 정하고, 예수 성심에 더 깊이 다가간다. 기자가 방문한 날의 주제는 ‘십자가 사랑의 날’이었다.
“예수 성심이여! 제 안에서 쉬시고 당신께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작은 일에도 당신을 거부하지 않고 십자가와 함께 저를 찾아오실 때에 당신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수녀들은 신자들이 ‘예수 성심’이라는 말에는 익숙하지만 정작 어떤 신심인지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여겼다. 예수 성심은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감사하는데서 나아가 그 사랑에 응답하는 차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신심이다.
“단순한 기도면 충분합니다. 인간을 위해 상처받고 피 흘렸던 그리스도의 마음을 위로해 드리는 것입니다. 첫 월급 타고 그동안 키워준 부모에게 선물하는 마음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보답하다 보면 그리스도와 인격적 관계를 맺게 되고 결국 더 큰 사랑과 위로를 받게 됩니다.”
공동체, 세상과의 소통
수도원의 모든 중심은 기도지만, 수녀들의 말처럼 수녀원 역시 작은 사회다. 현재 한국분원에는 7명의 수녀와 1명의 성소자가 살고 있다. 콜롬비아에 모원을 두고 있는 방문수녀회는 한국에 2005년 진출했다. 아직 20년이 채 되지 않아 한국 수녀보다 콜롬비아 수녀들이 더 많고, 거기다 한국 수녀 3명은 지원자, 수련자, 유기서원자로 모두 양성 과정에 있다. 이처럼 국적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지만, 공동체 수녀들은 걷는 발걸음마저 모두 닮아있다.
“하나의 영성을 살아가기 때문에 문화가 다른 어느 나라 수도회를 가도 비슷합니다. 처음엔 힘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이 공동체와 규칙 안에서 큰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우선하는 건 사랑이고요.”
흔한 스마트폰조차 지니고 있지 않아, 요리나 청소, 제병 작업 등 소임을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런 와중에 기자에게 대접한 식사는 비싼 돈 주고 사먹어도 느낄 수 없는 환대와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이었다.
“이 또한 하느님 은총에 의지하면서 하지요. 저희가 봉쇄된 공간에 있지만, 어떤 소임을 하든 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임하고 있습니다.”
수도회 공간은 세상과 단절됐지만, 그 안에서 치열하게 소통하고 있었다. 원장 수녀에 대한 순명, 동료 수녀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세상을 위한 간절한 기도로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6년 반포한 관상 생활에 관한 교황령 「하느님 얼굴 찾기」에서 관상 수녀들을 “이 시대 모든 이의 여정을 비추는 등불”(36항)이라고 밝혔다. 일상의 모든 시간을 하느님 은총에 기대 헌신하는 방문수녀회 수녀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등불이 되고 있었다.
수녀들은 공동체와 세상에 대한 자유롭고 헌신적인 삶을 통해 천국의 표상을 보여주면서 예수 성심이 결코 피상적인 신심이 아님을 증거했다.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서 치열하게 기도하고 성찰하는 수녀들의 사소한 일상은 거룩한 봉헌의 순간이 됐고, 거룩한 봉헌은 수녀들의 미소처럼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