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제13대 국제 카리타스 의장으로 선출된 도쿄대교구장 기쿠치 이사오 대주교는 일본 카리타스 상임이사부터, 일본 카리타스 의장직을 오랫동안 역임하며 카리타스를 통해 일본 교회에는 물론, 보편 교회에 사랑의 의미를 전해온 목자다. 기쿠치 대주교는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카리타스는 사랑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면서 전 세계에서 사랑의 사업으로 활약 중인 카리타스가 더욱 하나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제 카리타스 의장으로 선출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영광입니다. 카리타스와는 1995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의 난민 캠프에서부터 인연을 맺었습니다. 의장으로 선출됐을 때 몹시 놀랐습니다. 전임 의장(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이 아시아 출신이었기에 다른 대륙에서 선출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맡겨주신 소임을 충실히 수행해 카리타스가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하느님의 진정한 도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의장 선출 후 연설에서 ‘잊힌 사람들’을 언급하셨습니다. 그들은 누구이고, 교회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1995년 갔던 르완다인 난민 캠프부터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일본 도호쿠 지방까지. 저는 지구촌 곳곳에서 재난과 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그곳에서 ‘잊힌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숫자로만 기억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잊혔다는 뜻은 공동선이 각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양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카리타스 일꾼들 사이에서는 가톨릭교회가 늘 어디든 있기에, 카리타스 또한 재난 전, 재난 중, 그리고 재난 후에도 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우리 카리타스의 방식입니다. ‘숫자’를 넘어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합니다.”
- 도쿄대교구장직과 국제 카리타스 의장직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데.
“팬데믹으로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한편으론 비대면 문화가 발달하는 계기가 됐지요. 저는 도쿄에 머물면서도 온라인으로 로마에 있는 카리타스 사무총장과 의견을 나눌 수 있습니다. 기후 문제로 불필요한 출장과 이동을 줄이면서 일하는 데에 카리타스 내부에서 어느 정도 합의도 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 국제 카리타스의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입니까?
“전 세계 카리타스가 더욱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과 동반해야 합니다. 카리타스는 여느 국제 NGO처럼 단일한 조직이 아닙니다. 규모로는 국제 적십자사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이지만, 각 지역 교회 주교회의 산하에서 160여 개의 카리타스 조직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각국 카리타스는 규모도 다 다르고, 역사, 실무 지식과 경험도 다릅니다. 어떤 곳은 계속 재정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카리타스는 돈이 우선되어선 안 됩니다. 카리타스는 시노달리타스를 증언하는 조직이 돼야 합니다. 복음의 정신에 따라 늘 어려운 이들의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잘 조직된 지역의 카리타스는 그렇지 못한 나라의 카리타스와 연대하고 협력해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 국제 카리타스가 지닌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카리타스 조직은 전 세계에 걸쳐 있습니다. 각 본당과 선교 기지를 통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도 풀뿌리에서부터 사람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파악하고 전할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공여국의 의제나 개인의 이익에 기반하지 않고, 사람들의 필요에 맞춰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카리타스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위합니다. 주고받는 관계, 한반도의 남북 관계, 기부자의 의제에 의존하지 않고, 사랑이 교회의 본질적 가치임을 증거하는 조직입니다. 자선 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친절함에만 의존하지 않고, 우리의 믿음에 근거합니다.”
- 아시아 대륙에서 카리타스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필리핀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에서 가톨릭교회는 소수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복음 선포에 어려움도 겪지요. 복음 선포는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일찍이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통해 이야기했듯 ‘사랑은 거저 주는 것’이고, 사랑은 다른 목적을 성취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아시아의 카리타스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종이 되어, 창조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하느님 사랑의 진정한 증인이 돼야 합니다.”
-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일본 교회의 상황은 어떤가요?
“도쿄대교구의 경우, 팬데믹 기간 미사를 중단하고 모임을 제한했습니다.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본당 활동을 재개하려고 했지만 무산됐지요. 올해 부활 시기를 기점으로 본당 활동을 대부분 정상화했습니다. 하지만 잃은 게 많습니다. 사목활동 전반이 중단됐고, 재정적으로도 위축됐습니다. 신자들은 소속감을 잃고 냉담에 들어갔습니다.
본당 활동이 재개되고 있지만 멈췄던 활동을 다시 해나가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온라인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신앙 회복을 도울 온라인 교육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이전 모습을 되찾는 것을 넘어 새롭게 시작하길 원합니다.”
- 보편 교회는 시노드 중입니다. 도쿄대교구도 교구 단계 시노드를 경험했는데요.
“교구별 시노드 기간에 본당에서 대면 모임을 열 수 없었습니다. 온라인으로 모임을 하고자 했지만, 활동적인 본당도 대부분 신자가 노인들이었죠. 그들은 온라인 모임을 어려워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노드 모임에는 정말 제한된 인원만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시노드의 개념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대다수입니다. 몹시 안타깝습니다.”
- 일본 교회의 시노드 최종문서 가운데 눈여겨봐야 할 내용이 있다면요?
“일본 교회가 마주한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고령화입니다. 성당에서 아이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유아 세례 역시 크게 줄었지요. 이와 관련한 우려가 시노드 과정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일본 내 외국인 신자들은 문화가 다른 탓에 분리된 독립적인 공동체를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한몸이 되어야 합니다.
평신도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도 눈여겨봐야 합니다. 최근 각 본당에서는 의사 결정 체계를 민주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목소리를 성령의 인도를 따라 들으면서 진정한 시노달리타스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25년 넘게 한일주교교류모임이 이어져 왔습니다. 지금까지 이룬 성과를 평가해 주신다면요?
“우리는 두 나라 사이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25년에 걸쳐 모임을 열어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경험과 사목적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공동의 해결책을 모색해 왔습니다. 언어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하나의 주교회의와 같습니다. 저는 이 주교들의 모임이 더욱 확대돼 대만 교회는 물론 중국 교회와도 교류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양국 교회가 더욱 교류를 늘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일 양국 주교단의 교류는 두 나라만의 모임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 가톨릭교회의 미래를 위해 존재합니다. 물론 양국 정부는 완벽하게 해결책을 찾기 힘든 역사, 문화적 문제로 계속 반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 교회들은 다양성 속에서 일치의 진정한 증인이 돼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저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보여준 눈부신 발전에 늘 감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제들이 일본 교회에서 사목할 수 있도록 파견해주신 몇몇 한국 주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도쿄대교구청 인근에 함께 있는 한인 공동체의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며 이들이 저희 교구의 에너지원과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일 양국 교회가 계속해서 교류하고 협력해 두 나라 교회가 함께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기쿠치 이사오 대주교는?
1958.11 일본 이와테현 미야코시 출생
1986.03 사제 수품(말씀의 선교 수도회 소속)
1999~2004 일본 카리타스 상임이사
2007~2022 일본 카리타스 의장
2004.05.14 일본 니가타교구장 임명
2004.09.20 주교 수품
2011~2019 아시아 카리타스 의장
2017.10.25 도쿄대교구장 임명
2017.12.16 도쿄대교구장 착좌
2023.05.16 제13대 국제 카리타스 의장 선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