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는 생명을 키우고 돌보는 일이다. 하지만 규격화된 농산물을 대량으로 얻기 위해 반생명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화학 비료와 살충제 등 유독 물질은 점차 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우리가 생태적인 삶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16일은 제28회 농민 주일이다. 올해 주제는 ‘기후 재난 시기에 유기농을 다시 생각하여 봅시다’이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박현동 아빠스는 농민 주일 담화를 통해 “그리스도인은 생명체의 대량 학살을 가져올 수 있는 산업 농업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 농업을 선택함으로써 모든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을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 주일을 맞아 자연생태적 순환농법으로 젖소를 키워 얻은 우유로 유기농 유제품을 생산하는 가톨릭농민회 전주교구연합회 김홍철(프란치스코, 60, 대광목장 대표) 농민을 만났다.
대광목장의 하루
모두가 잠든 새벽 4시. 목장에는 어김없이 불이 켜진다. 목장의 하루는 착유(젖을 짜는 일)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착유는 하루 두 차례, 새벽 4시와 오후 4시에 이뤄진다. 착유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젖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소도 습관적인 동물이거든요. 착유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져서 젖이 너무 불어나면 소도 힘들어하고 병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합니다.” 착유가 끝나면 사료 급여, 주변 정리, 장비 관리가 이어진다. 그러다 보면 다시 다가오는 착유 시간. 중간중간 쉬는 시간은 있지만 온종일 목장 일에 매달려야 한다. 아니 1년 365일 목장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착유한 우유는 축사에서 걸어서 2분 거리인 유제품 제조공장으로 옮겨진다. 그만큼 신선한 우유로 유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대광목장에서 생산하는 유제품은 요구르트 2종류, 치즈 4종류 등 모두 6종류다. 훌륭한 요리사도 재료가 좋지 않으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없듯이 좋은 원유로 좋은 유제품을 만들겠다는 것이 김홍철 대표의 철학이다.
관행을 버리다
착유를 끝낸 젖소들이 한가롭게 축사에서 오전을 보내고 있다. 큰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덕분에 축사는 크고 작은 소음이 없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600여 평의 축사에는 현재 젖소 120여 마리가 살고 있다. 축사 옆으로는 젖소들을 푸른 초원으로 안내하는 길이 나 있다. 이곳에서 젖소들은 풀을 뜯으며 여유를 즐긴다. 전북 완주군에 위치한 대광목장 풍경이다.
대광목장은 자연생태적 순환농법으로 젖소를 키우는 친환경 목장이다. 젖소들은 유기농 목초를 먹고 자라고, 분뇨는 유기농 퇴비로 사용해 유기농 목초를 재배한다. 목장 주변의 넓은 초지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목초는 다시 젖소들의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 된다.
대광목장은 유기농으로 전환하면서 기존의 젖소 250여 마리를 절반으로 줄였다. 대량생산보다 동물복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밀식 사육에서 벗어나 젖소들에게 넉넉한 공간을 제공하고 축사 청결에도 힘쓰고 있다. 젖소들의 스트레스나 질병이 적은 이유다.
오랜 목장 운영의 꿈
김 대표는 어려서부터 목장 운영에 대한 꿈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다녔지만, 목장 운영의 꿈이 떠나질 않았다. 결국 입사 5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1993년 20평의 작은 축사에서 송아지 15마리로 목장 문을 열었다.
목장 일은 천직이라 생각했다. 전염병으로 모든 소를 땅에 묻은 적도 있고 업체와 갈등을 겪는 등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저에게 잘 맞고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 맞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기도 할 것 같고요. 하느님이 주신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렵지만 한 발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10년 전부터는 유제품 가공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국내 대학에서 연수를 받았고, 뉴질랜드에 있는 치즈 학교도 다녀왔다. 처음에는 실패도 많이 했다. 목장에서 생산한 우유를 모두 유제품을 만드는 데 써 직원들이 걱정할 정도였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했습니다. 무서워하고 피하면 영원히 못 만들거든요. 처음에 실패한 치즈는 지금까지 보관 중입니다. 일이 힘들 때마다 그 치즈를 보면서 마음을 다시 잡으려고요.” 그 결과 김 대표가 만드는 브리치즈는 우리나라에서 식약처에 등록된 ‘유기농 1호 치즈’가 됐다.
유기농에 대한 건강한 고집
“햇빛, 바람, 물. 이 세 가지는 하느님이 주신 거거든요. 이 세 가지로 농사를 짓는 것이 저는 유기농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김 대표는 “하느님이 주신 자연의 큰 틀 안에서 저는 그저 조금의 힘을 보태 순환만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충을 없애기 위해 농약을 사용하는데 해충과 함께 땅에 있는 미생물까지 죽게 되거든요. 땅은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 호흡해야 하는데 미생물이 죽으면서 죽은 땅이 되는 거죠.”
김 대표는 “그동안 표준화된 농산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 관행농법으로 농사를 지었다면, 유기농법은 시대적인 흐름이 됐다”고 목소리 높였다. “쉽지 않은 농법이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앞으로 농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땅을 살려야 하고 또 우리 후손들도 생각해야죠. 그리고 먹거리도 점점 양적인 측면에서 질적인 측면으로 옮겨갈 겁니다.”
김 대표는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유기농 제품을 구매해야 비로소 유기농의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소비자가 유기농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생산자가 유기농을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소비자가 자연환경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 대표가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유기농 재료로 유제품을 만드는 이유이다.
작은 희망이 되기 위해
김 대표의 꿈은 낙농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낙농업 하는 분들이 점점 줄고 있어요. 저도 생산자이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 저뿐만 아니라 낙농업을 하는 분들에게도 희망이 되고, 나아가 우리나라 낙농업이 더 발전할 수 있길 바라는 겁니다. 작은 목장을 운영하면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김 대표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현재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후손들에게 떳떳하기 위해 그는 지금도 소들과 함께 묵묵히 걸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