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에서 온 편지] 대만에서 평신도 선교사 배시현 (상)
배시현 선교사가 대만에서 함께하고 있는 원주민과 귤을 재배한 뒤 기념 촬영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제공
대만의 원주민 16개 부족
대만은 아시아 태평양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으로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중 원주민은 약 55만 3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를 차지합니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원주민은 아메이족, 타이야족, 파이완족, 부농족, 베이난족, 루카이족, 조우족, 사이시아족, 야메이족, 샤오족, 카마란족, 타이루거족, 사치라이야족, 사이더커족, 라아루아족, 카나카나푸족 등 16개 부족이며, 각 민족은 자신의 문화와 언어, 풍습, 사회 구조를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출처=중화민국원주민지식경제발전협회)
타이완(대만)의 타이베이는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여행지로 몇 번은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만의 원주민에 대해서는 조금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만에서 9년째 원주민들과 함께 살며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마홍(瑪虹, 원주민 이름) 선교사입니다. 제가 원주민들과 함께 지낸다고 하면 제 친구나 지인들은 아프리카 어딘가의 부시맨같은 부족을 상상하는지 “원주민?”이라고 되묻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원주민이라고 빤스만 입고 살지는 않아. 그리고 덧붙여 마을마다 인터넷도 있어~!”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만큼 대만의 원주민은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하게 생각될지 모르겠습니다.
대만 원주민이 가꾸고 있는 귤 농장 모습.
배 선교사(맨 왼쪽)와 대만 원주민이 귤 농장에서 함께한 모습.
전례, 청소년 사목 등 본당 사도직
저는 대만의 원주민 부족 중 ‘타이야족’(泰雅族, Atayal)이 거주하는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8개의 본당이 사목적으로 관할하는 곳에 있습니다. 미사(사도 예절), 청소년 사목, 소공동체 모임(가정 기도), 환자 방문 등 일반 본당에서 이뤄지는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원주민 대부분은 귤과 감, 복숭아 등 과일을 재배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더불어 먹거리 농작물인 양배추와 콩, 옥수수, 배추, 토마토, 생강 등 채소를 키웁니다. 예전에는 바라(고라니 종류), 산돼지, 날다람쥐 등을 사냥해 주식으로 먹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계가 아닌 재미로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원주민들과 소통하고,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생업을 돕곤 합니다. 경험이 없었기에 궁금했던 농사일을 막상 접해 보니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신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정말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귤을 수확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오전 7시, 귤밭으로 가기 위해 동네 사람들과 한 신자분 집에 모였습니다. 먼저 아침으로 찐만두를 하나씩 먹었는데, 일을 하려면 아침은 꼭 먹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아침 식사를 잘하지 않았기에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모든 것을 원주민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얼른 하나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곧 우리는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좁은 산꼭대기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11월 중순경에서 3월 중순까지 귤을 수확합니다. 특히 설 명절에 귤을 선물하는 풍습이 있어, 이 시기를 아주 바쁘게 보냅니다. 귤은 중국어로 ‘쥐이즈’(橘子)라고 발음합니다. 귤(橘)을 중국어 간체자로 쓰면 桔(쥐이)인데, 이 글자가 ‘길하다’는 뜻을 지닌 吉(지이) 자와 생김과 발음이 비슷해서 ‘대길대리(大吉大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귤을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배 선교사가 본당 신자와 환하게 웃고 있다.
하느님 만나고 하느님 사랑 실천
우리는 한 나무씩 맡아 귤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귤나무는 아주 가파른 곳에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 해보는 것이기에 낮은 곳에 있는 귤 가지에서 귤을 수확했고, 베테랑 원주민들은 높고 깊이 자란 귤들을 수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틈틈이 저에게 ‘마홍! 일하기 괜찮아?’하고 물었습니다. 이런 관심은 원주민들이 지니고 있는 사랑입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보면서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지 배우기도 했습니다.
한 그루에 엄청나게 많은 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는데, 무거워진 가지가 부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가지에 바구니를 걸어 수확한 귤을 담았으니 작업하기에 편리하긴 했지만, 가지가 휘어져 부러질까 계속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귤로 가득 찬 바구니를 가지에서 내려 땅에 놓아야 안심이 되면서 ‘귤의 가지는 정말 강하구나! 마치 부모님이 힘을 다해 자식들을 돌보는 것처럼’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감탄하는 사이, 한 신자분이 말씀을 보태주셨습니다. “하나의 나무(부모)에서 나지만, 귤(자식)의 크기나 색깔이 모두 다르다”며 사람과 같다고 얘기해 주신 것입니다. 그 순간 하느님의 마음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인 귤 하나까지도 돌보시니 얼마나 위대하고 경이로운지, 정말 보람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오전 작업을 끝내고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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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선교사 배시현 소화데레사 / 성골롬반외방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