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획은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와 가톨릭신문이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 시노드 여정에서 경청한 한국교회의 여성 현실
2022년 말 현재 한국천주교회의 신자 구성을 보면 약 600만 명에 달하는 신자 중 여성 신자 비율은 57.1를 차지하고, 전례의 참여나 각종 사도직 활동에서도 여성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교회의 의사 결정이나 통솔하는 역할에서 여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각 본당의 사목회장이나 사목회 임원, 성체분배 직무를 수행하는 평신도 중에 여성이 얼마나 되나? 교구청이나 교회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 여성 임원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성직자와 여성 수도자의 관계는 어떠한가? 아울러 교회 안에서 성별 역할 구분이 뚜렷하고, 대체로 여성들이 성당 청소나 주방 봉사를 전담하는 교회 문화는 이대로 괜찮은가?
이러한 현실에 대해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이뤄진 시노드 여정에서는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성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증진하는 교육과 연구 그리고 활동 지원을 통해 여성들의 활동에 대한 교회의 인식 전환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였다.”(2022년 10월 14일 한국 교회 종합의견서) 이 내용은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에도 그대로 인용되어, 각 대륙 시노드에서 여성의 활동과 관련해 이 문제를 숙고했다.
아시아 대륙회의를 위한 한국교회 종합의견서에서는 교회 내 여성의 현실과 관련해 이러한 성찰과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 사회 안에서 왜곡된 유교 문화가 교회 안에서 남성 중심 문화로 드러난다. 이는, 남성인 사제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 혹은 사제의 가부장적 태도로 나타나며, 평신도 사이에서는 왜곡된 성 역할 구분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결정은 남성이 하고 여성은 그 결정된 바를 실행하기만 한다거나, 단체의 책임자는 남성이 맡고, 여성은 드러나지 않는 봉사에 임하는 정도의 역할 구분이 존재한다. 때로는 여성 스스로 여성의 역할을 보조자로 규정하고, 같은 여성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평등한 신앙의 기쁨을 체험했던 초기 교회의 여성들
세례를 받은 이들은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갈라 3,28)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그리스도교는 초기부터 민족, 신분, 성별 등의 차이를 두지 않고 세례 안에서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고자 지향했고, 그 신앙의 여정에서 여성들은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고 전하는 ‘선교하는 제자’(「복음의 기쁨」 120항)가 되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여성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가르치고, 치유하시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청하고 대화하며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셨고, 그 여인을 통해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전하셨다.(요한 4,1-42) 예수께서는 시중드는 일을 돕는 대신 다른 제자들처럼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리아에게 좋은 몫을 택하였다고 옹호하셨다.(루카 10,38-42) 마르코 복음에는 시몬의 장모(마르 1,29-31), 야이로의 딸과 하혈하는 부인(마르 5,21-43), 시리아 페니키아 여자의 딸(마르 7,24-30) 등 예수께서 여성들을 치유하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예수와 대화하고, 가르침을 듣고, 치유받은 여성들은 제자들과 함께 예수를 따라다녔고(루카 8,1-3), 예수의 몸에 향유를 부어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준비하였으며(마태 26,6-13; 마르 14,3-9; 요한 12,1-8), 예수께서 잡히시자 모두 달아나 버린 제자들(마르 14,50)과 달리 끝까지 십자가 죽음을 지켜보며 장례를 준비했다.(루카 23,49-56) 덕분에 마리아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처음으로 만난 증인이 되었고, 다른 제자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한 ‘사도들을 위한 사도’(토마스 아퀴나스)가 되었다.(마르 16,9-11)
사도행전이나 바오로 서간에도 초기 교회공동체에서 함께 기도하고 봉사하며 복음을 전하는 여성들의 이름이 여럿 언급된다. 필리피 공동체에는 그 지역에서 처음으로 온 집안이 함께 세례를 받고 바오로의 선교를 도운 리디아(사도 16,11-15)를 비롯해 바오로의 협력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한 에우오디아와 신티케(필리 4,2-34)가 있었다. 로마서 16장에서 바오로 사도가 안부 인사를 전하며 언급한 이들 중에는 켕크레애 교회의 일꾼 포이베, 협력자 프리스카(프리스킬라), 뛰어난 사도 유니아, 로마 신자들을 위해 애를 많이 쓴 마리아, 트리패나, 트리포사, 율리아 등의 여성이 있었다.(로마 16,1-23)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사도 12,12)했던 것처럼, 가정에서 모여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했던 초기 가정교회에서 여성들은 신앙공동체 모임이 형성되고 운영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스도교 초기 교회공동체에서 활약하던 여성들처럼, 한국천주교회의 초창기 여성 신앙 선조들도 철저한 신분 계급 문화와 남존여비 유교 사상이 공고하던 사회질서를 뛰어넘어 신앙의 기쁨을 살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그 신앙을 증거하고자 했다. 한국교회의 103위 순교성인 중 47명, 124위 순교복자 중 23명이 여성인데, 과부, 부인, 궁녀, 동정녀였던 이 여성들 가운데 성녀 현경련 베네딕타와 복자 강완숙 골룸바는 여성회장으로서 신앙공동체를 이끌었고, 복자 윤점혜 아가타는 동정녀 공동체의 회장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했다.
■ 세상을 살리고 돌보라는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는 교회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여성이 동등하게 참여하고 여성 지도자가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 지도력의 성비 불균형을 개선하자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는 구세주를 잉태하시고, 아들의 삶을 평생 동반했으며, 제자들과 함께 교회공동체를 이루어 기도하신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과 모범으로서 존경”(교회헌장 53항)하며, 그 신앙의 모범을 따르고자 하는 여성적 특성을 지닌 교회다.
2015년 2월 교황청 문화평의회에서는 여성이 생명을 낳고 키우는 ‘생육성(生育性, Generativity)’에 관해 성찰한 바 있는데, 이러한 특성이 사회적으로 확장되어 세상을 살리고 돌보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생육성은 여성에게만 주어진 특성은 아니지만, 주로 여성들이 앞장서서 실천해 왔다. 함께 걷는 교회가 되자는 시노드 여정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바라는 것은, 살림과 돌봄의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여성들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하다는 초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영 발비나(우리신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