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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명

[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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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그 성읍에 외쳐라.”(요나 3,2)

기원전 이스라엘 민족은 주변 강대국들의 엄청난 문명에 놀라 수없이 쓰러진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의 찬란한 문명 앞에 노예로 살면서 잔뜩 주눅이 든 얼굴로 그 경이로움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가 회개를 외쳤던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도 그 놀라운 문명을 경험하였을 것이고, 바빌론 유배에서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웅장함을 또다시 초라한 노예의 슬픈 눈길로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페르시아 문명과 그리스 대제국, 로마 대제국의 위용 앞에서는 넋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자신들의 선민사상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혼란과 갈등 속에 숱한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목숨처럼 느끼며 지켜온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야훼 신앙에 대한 불신으로도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격동의 처참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자신들의 유일한 희망인 야훼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가 더욱 험난해져도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현자들은 더욱 소리 높여 마지막 희망은 하느님뿐이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또 외쳤던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는 딸 것이 없고 밭은 먹을 것을 내지 못할지라도 우리에서는 양 떼가 없어지고 외양간에는 소 떼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 주 하느님은 나의 힘.(하바 3 ,17–18)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1928~2016)는 「제3의 물결」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인류가 직면했던 거대한 문명의 물결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 첫 번째 물결은 1만 년 전에 일어난 ‘농업혁명’이고, 두 번째 물결은 300년 전에 일어난 ‘산업혁명’이며, 세 번째 물결은 다양한 에너지 자원, 과학기술, 지식 정보의 위상, 매스미디어의 탈대중화 등을 꼽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권력은 미래의 변화를 예견하고 주도하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부분 엘빈 토플러의 주장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 문명의 거대한 제3의 물결이 세상을 삼킬 듯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AI가 인간과 바둑을 두어 이기고, 챗GPT로 논문을 쓰고, 시를 지으며, 그림도 그리는 등, 세상이 황홀경에 놀라워 열광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대한 과학 문명 시대에 성당에서 고리타분한 성경을 낭송하고, 계명을 지키라 하고, 성가를 부르며 “제 탓이오!”를 외치며 가슴을 치는 전례 행위가 과연 젊은이들에게 어떤 뜨거운 신앙으로 다가올 수가 있을까요? 제의를 입은 사제가 경건하게 미사를 집전하며 강론을 한다고 감동의 울림을 줄 수 있을까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밀려오는 강대국들의 거대한 문명 앞에서 그토록 신앙의 정체성에 갈등했던 모습이 마치 재현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안다’ 하였으니 옛 신앙인들이 거듭 반복하여 깊이 깨달았던 고귀한 신앙의 교훈을 오늘 우리가 또다시 배워 깊은 묵상과 성찰을 통해 얻게 된 생명의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밀려오는 과학 문명이, AI가, 챗GPT가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줄 수 없습니다. 세상 그 어떤 놀라운 문명도 영원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존귀한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집회서의 현인은 밀려오는 쓰나미 문명 앞에 갈등하는 오늘의 신앙인들에게 확고한 신앙의 선택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 사람 앞에는 생명과 죽음이 있으니 어느 것이나 바라는 대로 받으리라. 참으로 주님의 지혜는 위대하니 그분께서는 능력이 넘치시고 모든 것을 보신다.”(집회 15 ,16–18)

과연 세상 그 모든 것 앞에 하느님께서 존재하십니다. 그래서 요나는 또다시 말을 건넵니다.

“제가 그 옛날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서 보았던 웅장하고 거대한 문명도 나를 그곳으로 파견하신 주님의 권능에 비추어 보면 한낱 먼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질 먼지에 불과하였습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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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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