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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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대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추모미사

- 총대리 손희송 주교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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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2153() 오전 11

-장소: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성직자묘역

 

1. 우리는 지금 지난 427일 선종하신 정진석 니꼴라오 추기경님을 추모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엊그제 51일에 거행된 장례미사에서는 애도와 눈물,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의 마음으로 추기경님과 작별을 하였습니다.

추기경님의 90 평생을 삶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오늘 복음의 말씀을 빌려서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애쓰고 노력하였다.’ 그런 분이기에 분명히 하늘 아버지의 집에 안전하게 도착하셨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은 예수님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믿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모범이 되는 사람, 요즘 말로는 롤 모델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며 기억하는 사도 필립보, 야고보와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 또 교회가 인정한 성인들이 바로 그런 롤 모델 역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인이라고 하면 좀 멀게 느껴집니다. 우리 가까이 있는 사람, 우리와 함께 살던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가 있습니다. 정 추기경님이 바로 그런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 정 추기경님은 생전에 늘 행복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말씀의 주제도 행복이었습니다. “늘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행복을 원하고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해서는 서로 생각이 다릅니다. 세상은 덧셈에 행복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남보다 돈을 많이 모아야, 힘이 세고 영향력이 강해야, 자리가 높아야, 명예가 많아야, 즐거움과 쾌락이 커야 행복하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정 추기경님은 덧셈이 아닌 뺄셈에 행복이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오셨습니다. 당신은 바지 하나를 18년 입으시면서 절약하고 아끼셨지만,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을 부지런히 나누어주셨습니다. 죽음을 준비하시면서 가진 바를 모두 가난한 이들을 위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내어놓으셨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각막까지 기증하셨습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통장 잔고 800만원은 비서진을 통해 신세 진 곳, 필요한 곳에 모두 보내셨습니다. 정 추기경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바치신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것을 내어주신 것이고, 그런 삶이 바로 참된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정 추기경님의 유일한 욕심은 책 욕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전부 59권을 책을 번역, 저술하셨는데, 학창시절에 친구 신부와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자는 약속을 지키시고자 부지런히 책을 내신 것입니다. 그분의 책 욕심은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신자들을 신앙 성숙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자들을 위해 책을 저술, 번역하면서 소중한 시간과 재능을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정 추기경님은 뺄셈을 부지런히 하셨기에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께 의지하시면서 행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3. 정 추기경님은 나눔이란 뺄셈 외에 또 다른 방식의 뺄셈을 실천하셨습니다. 묵묵히 참고 인내하신 것입니다. 대부분은 사람은 억울한 말을 듣거나 모욕을 당하면 분노의 마음을 키우고, 자신이 당한 이상으로 갚아 주려고 벼릅니다. 하지만 정 추기경님은 억울한 말을 들거나 모욕을 당해도 참고 견디면서 온유함으로 대응하였습니다. 교구장 재임 시절에 시국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로부터 이런저런 안 좋은 얘기를 많이 들으셨습니다. 심지어 일부 사제들 은 공개적으로 그분을 비난하고, 그분 면전에서 거친 말을 하기까지도 했습니다. 교구청 참모진들이 흥분하면서 교회법적 조치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오히려 정 추기경님은 그런 대응을 만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추기경님은 자신에게 모욕을 준 이들에 대해 일체 어떤 언급하지 않으시고 평상심을 유지하셨다고 합니다. 정 추기경님 선종 후에 이런 이야기를 좀 더 상세히 들으면서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정 추기경님을 생각하면서 베드로 전서의 한 구절을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1 베드 2,23) 아마도 정 추기경님은 기도 중에 예수님과 깊이 일치하셨기에 예수님을 닮은 삶에 한 발 더 가까이 가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4. 마지막으로 정 추기경님의 장례를 치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을 했는데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 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많은 신자들이 오랫동안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기도와 신앙생활이 많이 느슨해지고 활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21일 정추기경님의 병세가 위중해지면서 입원하시고, 바로 임종이 가까워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신자들은 추기경님을 위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교구장님께서는 9일 기도를 요청하시기까지 했습니다. 병세가 조금 완화된 후에도 신자들은 계속 기도하였고. 그 기도는 그분의 선종과 조문 기간에 정점에 다다른 듯했습니다. 저는 추기경님의 빈소인 명동대성당에 예상을 뛰어넘는 많은 신자들이 와서 조문을 하고 기도하며 미사를 지내는 모습을 감동하면서 지켜보았습니다. 이 기도가 침체한 마음에 활력을 주고, 흩어진 마음들을 다시 한곳으로 모으는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이분은 돌아가시면서도 교회에 보탬을 주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19 사태로 기도와 신앙생활에서 느슨해진 신자들이 두 달여 동안 정추기경님을 위한 기도를 통해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정 추기경님은 당신의 투병과 죽음을 통해서도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도와주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추기경님께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살아생전에 초지일관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던 정 추기경님은 이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실 것입니다. 아울러 그분은 하느님 곁에서 이 세상과 우리나라와 한국천주교회,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특별히 가난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 열렬히 전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정 추기경님의 전구에 응답하여 그분이 몸소 보여주신 행복의 길, 덧셈이 아닌 뺄셈으로 참된 행복에 이르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나중에 천국에서 정 추기경님을 기쁘게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자비하신 주님,

추기경 정 니꼴라오와 다른 죽은 모든 교우들의 영혼이 평화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서울대교구홍보위원회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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