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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에서 온 편지] 볼리비아(상) 치키토스에서

김일옥(헬레나) 예수성심시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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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리비아 정글에는 10대에 아이를 낳은 `소녀 엄마들`이 많다. 우리 눈에는 아이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 필자)
 
 
  1998년 남미 볼리비아로 떠나라는 명을 받고 볼리비아 제2의 도시 산타크루즈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성 프란치스코 마을로 왔습니다. 그곳에서 어렵게 셋방을 구해 선교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웃통을 훌렁 벗은 채 반바지만 입고 버젓이 거리에 나와 앉은 옆집 아저씨들, 마치 수영장에 온 것 같은 아줌마들 옷차림…. 옹기종기 모여사는 사람들 사이에 울타리도 없는 집에서 우리 또한 편안한 차림으로 시멘트바닥에 누워 한낮 더위를 식히곤 했습니다.

 밤마다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다니며 예수성심 사랑을 전하고, 이들의 문화를 배우고 익히며 살다가 2001년 다른 소임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작은 마을, 치키토스
 주님께서 볼리비아인들에게 연민을 품고 사는 제 마음을 읽으셨는지 2009년 다시 이곳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번에는 산타크루즈에서 동북쪽으로 300㎞ 떨어진 치키토스(Chquitos) 중심에 있는 콘셉시온 마을이었습니다. 치키토스(`작다`는 뜻)는 사람도 적고, 집도 작고, 모든 것이 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처음 볼리비아에 왔을 때는 출입문만 있고 창문도 방문도 없는 셋방에서 생활했습니다. 밤이면 불빛을 보고 모여드는 온갖 벌레들과 씨름을 했고, 비가 오면 방이 한강으로 변해 자다 일어나 빗자루질을 하며 살았습니다.

 콘셉시온 마을에서는 방문과 창문, 방충망까지 있는 좋은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집안에 살고 있는 각종 해충들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2만여 명이 살고 있는 콘셉시온 마을에는 크고 작은 공동체가 50여 개 있습니다. 본당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갈라서 남쪽은 멕시코 수녀님들이 담당하고, 우리 수녀회는 북쪽에 있는 22개 지역을 맡았습니다.

 4개 공동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 주변에 인접해 있지만 나머지 18개 정글공동체는 가까운 곳은 5㎞, 먼 곳은 124㎞나 떨어져 있습니다. 가장 먼 공동체까지 가려면 왕복 10시간이 넘는 긴 여행을 해야 합니다.

 정글 속 길을 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자주 맞닥뜨리게 됩니다.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고, 얼마 전까지 웅덩이였던 곳이 늪으로 변해 있기도 합니다. 자동차가 고장나 숲 속에서 다른 차량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정글여행은 많은 시간과 무한한 인내가 필요합니다.

 정글에 있는 여러 공동체들을 찾아다니며 신부님을 도와 세례ㆍ견진ㆍ혼인성사, 첫영성체 교리교육을 담당합니다. 13~14살이 되면 임신을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이가 아이를 낳는 꼴입니다.

 아빠 없는 아이들을 기르는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치고 위생교육과 성교육을 합니다. 또 이것저것 재료들을 준비해 가서 뜨개질, 바느질, 자수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침술치료를 할 줄 아는 수녀님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이들에게 침을 놓아줍니다. 정글에서 침술치료는 명성이 높습니다.


 
▲ 정글을 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는 일이 많다.
사진은 길을 막고 있는 나무를 치우는 모습.
 
 
#기다림과 가난을 배우며
 이곳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기다림과 가난을 배웁니다. 무엇을 하든 `빨리 빨리`를 외치는 한국과 달리 이곳은 여유롭습니다. 인터넷도 전기도, 수도도 없습니다.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버스도 없어 정글공동체에 살고 있는 이들이 마을까지 나오려면 나무를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들에게 자비를 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몇 시간, 심지어 며칠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우리 돈으로 3000원이 없어 심한 치통을 앓고 눈이 짓무를 정도로 아파도 이들은 병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전화 한 통이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돈을 아끼기 십리 길을 걸어갑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흘리며 걸어다니는 이들 안에 살아 숨 쉬고 계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조금 더 기다립니다. 그리고 불편과 가난을 즐기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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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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