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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나는 가톨릭 문인과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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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쌓은 사람을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237년 한국 천주교회사에도 수많은 ‘평신도 거인’이 존재해왔다. 그중에는 뛰어난 창조적 역량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준 문인과 예술가도 많았다. 그들의 흔적은 ‘도시의 얼굴’, 도로 이름에 고스란히 남아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충북 옥천 ‘지용로’ ‘향수길’

‘향수’로 유명한 정지용(프란치스코, 1902~1950) 시인은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고향, 충북 옥천군에는 ‘지용로’와 ‘향수길’이 있다. ‘향수길’은 시인 생가와 정지용문학관을 지난다. 시인은 재속 프란치스코회에도 입회한 독실한 신자였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인 1928년 교토 가와라마치 성당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신부에게 세례받았다. 귀국 후 1933년부턴 「가톨릭청년」 편집위원을 맡았다. 그리고 세례명 ‘방지거(方濟角, 프란치스코의 중국식 발음)’로 신앙시를 발표했다. ‘별’, ‘갈릴레아 바다’, ‘승리자 김 안드레아’ 등이다. 시인은 경향신문 초대 주간을 맡기도 했다. 한편, 서울 은평구에도 명예도로 ‘정지용길’이 있다. 시인이 납북 전까지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한 초당 터 인근 도로다.

 

 

 

 

 

 

 

 
 

 


충남 서산 ‘석동로’

‘한국 아동문학의 아버지’ 역시 가톨릭 평신도였다. ‘아시아의 노벨상’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윤석중(요한, 1911~2003) 선생이다. 온 국민이 아는 ‘어린이날 노래’와 ‘졸업식 노래’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충남 서산시에는 선생의 호에서 이름 딴 ‘석동로’가 있다. 선생은 20대부터 6ㆍ25전쟁 직전까지 아버지가 사는 서산과 고향 서울을 오가며 지냈다. 그러나 전쟁 통에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으면서 더는 서산을 찾지 않았다. 그는 1956년 수필가 피천득(프란치스코, 1910~2007) 선생과 새싹회를 창립, 어린이문화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새싹회는 그를 기려 ‘윤석중문학상’을 시상하고 있다.

 

 

 

 

 

 

 
 

 


경북 칠곡 ‘구상길’

경북 칠곡군에는 ‘구상길’이 있다. ‘초토의 시’로 유명한 ‘구도 시인’ 구상(요한 세례자, 1919~2004) 시인에서 이름 딴 길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시인은 함경남도 원산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 인근에서 자랐다. 이후 월남한 그는 성 베네딕도회가 옮겨간 칠곡 왜관에서 1953년부터 1974년까지 살았다. 한때 사제를 꿈꿔 덕원신학교에도 다녔던 시인은 신앙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주된 시상으로 삼았다. 평생 쓴 시 800여 편 중 600여 편이 신앙 시다. 시인은 1999·2000년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강원 원주 ‘토지길’

소설가 박경리(데레사, 1926~2008) 선생이 쓴 대하소설 「토지」에서 유래한 길도 있다. 강원 원주시에 있는 ‘토지길’이다. 1980년 서울을 떠난 선생은 18년간 원주에 머물며 「토지」 4부ㆍ5부를 완결했다. 이때 살던 집과 정원은 ‘박경리문학공원’ 안에 있다. 이 공원을 둘러싼 길이 바로 토지길이다. 2011년부터 ‘박경리문학상’을 시상하는 토지문화재단 역시 원주에 자리한다.

 

 

 

 

 

 

 
 

 


경남 창원 ‘심온길’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에는 천상병(시몬, 1930~1993) 시인을 기리는 도로가 있다. 그의 모교 마산중학교를 지나는 ‘심온길’이다. ‘심온’은 시인의 호로, 세례명 시몬에서 따왔다. 시인은 ‘하느님 말씀 들었나이다’, ‘하느님은 어찌 생겼을까?’ 등 신앙을 노래하는 시를 여러 편 남겼다. 그의 대표작 ‘귀천’ 역시 신앙 시로 볼 수 있다. 시인은 생전에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귀천’은 바로 독실한 신앙심의 표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전남 순천 ‘정채봉길’

「오세암」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정채봉(프란치스코, 1946~2001) 선생. 그의 고향 전남 순천시에는 ‘정채봉길’이 있다. 선생은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후, 가톨릭에 입교했다. 이후 동심과 신앙심을 녹여낸 아름다운 동화책을 많이 펴냈다. 지난해 개봉한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의 어린 시절을 담은 영화 ‘저 산 너머’ 원작도 그가 쓴 작품이다.

 

 

 

 

 

 

 
 

 


울산 중구 ‘고복수길’

울산광역시 중구에는 ‘고복수길’이 있다. 일제강점기 ‘타향살이’ 등을 부른 울산 출신 가수 고복수(요셉, 1911~1972) 선생에서 이름 딴 길이다. 그의 부인 황금심(마리아, 1921~2001) 선생도 인기를 누린 가수였다. 부부의 아들들도 가수가 됐다. 차남 고영민(안드레아)ㆍ손현희(아기 예수의 데레사)씨는 생활성가 가수다. 30년 넘게 활동 중인 두 사람은 현재 유튜브 채널 ‘고영민&손현희 찬양TV’를 운영한다. 부부의 두 딸도 한때 걸그룹 가수로 활동했다.


이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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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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