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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교구 양양본당 설립 100주년 감사 미사 봉헌

1921년 영동 지역 최초 설립, 근현대 한국사 간직한 신앙 못자리... 일제 강점과 6·25 전쟁 아픔 돌아보고 은총의 100년 감사 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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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가운데)가 22일 양양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양양본당 제공

 

 


춘천교구 양양본당(주임 박명수 신부)은 22일 교구장 김주영 주교 주례로 본당 설립 100주년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오랜 세월 주님 사랑에 감사하며 하느님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로 더욱 거듭날 것을 다짐했다.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은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본당의 설립 100년을 자축하고, 그동안 신앙적으로 모범적인 생활을 해온 신자들에게는 교구장 명의의 축복장이 수여됐다. 신자들은 올해 ‘은총의 100년, 기쁨의 100년, 희망의 100년’을 보내면서 열심한 미사 참여와 100주년 묵주기도 봉헌을 이어가고 있다.

박명수 주임 신부는 미사 강론에서 “양양본당은 초기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굶어가며 희생과 봉사, 기도와 자선으로 복음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하며 백 년을 향해 뻗어 나갈 초석을 놓을 수 있었다”며 “은총의 100년을 기뻐하면서도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해 나갈 힘을 모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전했다.

1921년 영동 지역에 최초로 설립된 양양본당은 일제 강점기와 6ㆍ25 전쟁 등의 아픔을 겪으며, 근현대 한국사와 교회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신앙의 못자리다. 병인박해 때 충청도에서 피신해온 많은 신자가 설악산을 넘어 이 지역으로 숨어들었고, 교우촌이 모태가 돼 본당이 설립됐다. 가난한 시절, 신자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본당 사목자와 한마음으로 기도와 전교에 임했다. 그러나 1936년 이 지역을 휩쓴 대홍수로 성당 건물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1940년 현재 자리에 성당을 세웠지만, 일제에 성당마저 빼앗기는 수모 속에 신자들은 숨어서 미사를 봉헌하는 아픔도 겪었고, 해방 이후 38선 이북에 있던 성당은 소련군에 의해 다시 한 번 수탈 당한다.

이후 3대 주임이었던 이광재 신부는 북한군과 주민의 삼엄한 감시를 따돌리고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의 월남을 도왔다. 끝까지 남아 성당을 지키다 체포된 이 신부는 무참히 총살됐다.

본당은 6ㆍ25 전쟁 중 북한군에 의해 소실됐다가 휴전 후 1954년 지금의 성전을 재건했다. 본당은 전후 어렵던 시절 ‘밀가루 신자’들을 따뜻히 대하며, 현북 농업전수학원(현 현북중학교)을 세워 배움터를 마련했고, 신용협동조합을 결성해 신자와 지역 주민의 삶을 도왔다. 현재 본당과 현북공소에서 어린이집, 요양원, 가정간호와 호스피스 및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이광재 신부의 자취와 믿음은 양양성당 내 기념관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으며, 현재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 양양본당은 설립 80주년이 되던 2001년부터 이광재 신부의 도움으로 성직자ㆍ수도자들이 남하한 길을 따라 걷는 ‘38선 티모테오 순례길’ 걷기를 매년 이어오고 있으며, 2017년 교구 성지로 선포됐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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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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