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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사도’ 복자 김기량 순교기념관 문 열어

1층 전시관·지하 경당으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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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교구가 제주시 조천읍 일주동로 1216에 마련한 김기량순교기념관 전경. 제주교구 사무처 제공




제주교구(교구장 문창우 주교)가 23일 제주시 조천읍 일주동로 1216 현지에 복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 1816∼1867)을 현양하는 ‘김기량순교기념관’을 개관, 개관전 ‘ 디 손심엉 만나는(함께 손잡고 만나는), 김기량’을 개최한다.

김기량순교기념관은 1층 전시관(79.20㎡)과 지하 경당(129.60㎡)으로 꾸며졌다. 1층 전시관에는 복자 김기량의 표류와 세례, 최양업 신부를 비롯한 사람들과의 만남, 순교자의 얼굴을 상징하는 김형기(중앙대 교수) 작가의 미디어 아트 ‘빛의 얼굴’도 선보인다. 지하 경당에는 복자 김기량의 표준 영정과 관련된 사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제주교구가 지금까지 해온 복자 김기량의 현양 역사도 영상으로 소개했다.

특히 이번 개관전에는 표류한 김기량을 일본 나가사키에서 만난 프티장(B.T. Petitjean, 1829∼1884) 신부의 서한 2통이 처음 공개된다. 김기량순교기념관은 프티장 신부가 알브랑 신부에게 쓴 1864년 12월 29일 자 편지는 김기량의 일본 표류 시기를 기존 1865년에서 1864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라고 밝혔다. 개관전의 기획 및 연출은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조한건 신부)가 총괄했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복자 김기량은 제주에 처음 신앙의 씨앗을 뿌린 ‘제주도의 사도’다. 제주교구 시복시성위원회는 1993년부터 김기량 순교자의 행적과 자료를 수집,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복시성 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제주 함덕리에서 태어나 1857년 배를 타고 모슬포로 가던 중 폭풍우를 만나 표류했지만 중국 광동성 해안에서 영국 배에 의해 구조됐다. 그가 조선인임을 확인한 영국인 선원들은 그를 홍콩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 인계, 김기량은 조선인 신학생을 만나 1857년 5월 홍콩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후 제주도로 돌아와 가족과 뱃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1866년 병인박해 때 통영에서 체포돼 순교했고, 제주 지역은 한동안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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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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