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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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퇴장료

김종보 요셉 소설가(춘천 솔모루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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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한해였다. 계절은 어김없이 산과 들을 곱게 물들이고 있었다. 미루었던 성사를 보기 위해 성당을 찾았다. 그날 강론은 홍천 ‘피정의집 ’오상현(요한보스코) 은퇴 신부님의 특별강론이었다.

신부님이 밝히신 소회는 이러했다. 은퇴하고 나니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더라. 그것이 내 몸에서도 느껴진다. 눈도 침침해지고 치아도 한둘씩 빠지더라. 이렇게 모든 것은 소멸해간다. 이 세상에 불멸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사라져 갈 뿐이다.

그런 신부님은, ‘여러분은 이 좋은 계절에 단풍놀이도 가지 않고 성당에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자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말씀은 이어졌다. 오들도 세상은 휘청거리며 돌아간다. 여러분도 내일부터 다시 한 주일을 시작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그러면서 온갖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고통도 만난다. 그러면서도 삶의 의욕을 불태운다. 그런 신부님이 다시 질문하셨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살아가는 그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모두가 꿈꾸는 그 희망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지요…?”

“네!”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이어 신부님은 미국 문화를 말씀하셨다. 미국에서는 모든 공연장에 들어갈 때 티켓을 끊는다. 하지만 한국처럼 입장할 때 제시하지 않는다. 그 나라 문화는 모든 공연이 끝나고 퇴장할 때 티켓을 낸다. 신부님은 그 퇴장료의 의미를 평생 간직하시며 사셨다고 했다. 듣고 보니 신부님의 소회가 참으로 경이로웠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는 세상에 사는 동안 열심히 퇴장료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 나는 그 말씀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료를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신부님은 평생 봉사와 헌신으로 사셨고, 은퇴하셨음에도 그 삶을 이어가신다. 그런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 지금까지 저축해 두신 그 퇴장료를 저에게 좀 빌려 주시면 안 되나요…?’ 하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무슨 방법으로 갚을 수 있을까. 내가 그런 생각에 젖어 있을 때 신부님은 그러셨다.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다. 이어진 말씀은 내세의 삶을 위해 확고한 신앙의 의지를 바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주어진 삶에 충실하되, 성령으로 임하시는 주님의 뜻을 받들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퇴장료를 준비하는 자세라고 하셨다.

11월은 위령 성월이다. 우리는 오늘도 부여받은 삶을 살아가며 죽어간다. 그렇게 하느님의 섭리 안에 거역할 수 없는 소멸의 시간을 타고 넘어간다.

나는 문득, 오묘한 진리를 깨달았다. 부여받은 하루를 성령의 뜻대로 살면서 퇴장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천국에 입장하기 전까지는 절대 성령과 분리될 수 없다는 새로운 진리를… 그렇게 열심히 퇴장료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 신부님은 강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미사에 나오신 교우 여러분. 세상에 사는 동안 퇴장료를 두둑하게 준비해 놓으세요. 그리고 훗날, 한 분도 빠짐없이 하늘나라에서 나와 다시 만납시다!”

주일 미사를 마치고 나오자 한낮의 햇살을 받은 단풍잎들이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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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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