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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0년간 보여준 것은 ''덧셈의 영성''"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10주년 기념 정제천(예수회) 신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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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정제천 신부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아래 글씨는 교황이 남긴 친필 메모. 정제천 신부 제공

 

 


‘평화의 사도’로 지구촌 곳곳에 주님 사랑을 전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이 13일 선출 10주년을 맞는다. 교황이 그동안 세상에 보여준 행적과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그 답을 듣기 위해 필리핀에 있는 동아시아 사목연수원 원장 정제천(예수회) 신부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예수회 한국관구장이었던 정 신부는 교황 수행비서 겸 통역을 맡았다. 아울러 2019년 교황과 노인 친구들이 집필한 「세월의 지혜」를 번역했다. 2021년에는 그가 소장을 맡은 이냐시오영성연구소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으로 교회를 쇄신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책과 신학을 담은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를 펴내기도 했다. 

아래는 정 신부와 일문일답.



▲ 신부님은 2014년 방한하신 교황님을 직접 만나셨죠. 어떤 분이셨나요?

가까이서 뵌 교황님은 친절하고 자상하시며 남의 말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었습니다. 사제들에게 양의 냄새가 나 는 목자가 되라고 당부하셨는데, 교황님이야말로 그런 삶을 몸소 사신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전인 2013년 3월 13일, 교황님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실 때도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선사하셨습니다. 모든 신자들에게 강복하시기 전에 먼저 고개를 숙이고 당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셨죠. 군림하고 지배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들을 존중하고 백성들과 함께 걸으시는 분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심어주셨습니다. 교황님은 또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말씀을 잘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어려운 말도 쉽게 표현하시고, 상대방을 무장해제하는 데에 특별한 자질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방한 이후에도 교황님을 로마에서 두 차례 더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2015년 3월 관구장 학교와 2016 년 10월 예수회 제36차 총회에 참여했을 때였습니다. 저를 기억해 주시어 아주 기뻤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10년간 하신 일을 요약하면 무엇일까요?

저는 지난 10년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행적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교황', '예수님을 중심에 두신 교황',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신 교황'입니다. 

교황님은 재위 10년간 「복음의 기쁨」에서 시작하여 「찬미받으소서」와 「모든 형제들」 등 여러 회칙을 반포해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노력을 계속하셨습니다. 교회를 말랑말랑하고 평평하고 팔팔하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셨다고 느낍니다. 그 덕에 수직적이었던 교회가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교황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시노달리타스, 협의의 정신으로 표현하시고 교회 구성원들이 '서로 듣고 식별하고 협의하는 문화'를 만들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나날이 실행한다면, 하느님이 우리 교회를 통해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열매이고, 살아있는 생명체이죠. 생명이 있는 것은 부드럽고 유연하고 때로는 유약합니다. 반면에 이미 죽은 것과 무기물은 굳어서 딱딱합니다. 교회에 따로 주인이 있고 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스승이 있고 학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위가 있고 아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교회의 주인이지만, 그 누구도 영원한 주인이 아니기에 모두가 객일 뿐입니다. 교회에서는 누구나 스승이고 학생입니다. 교회에서는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위이지만, 섬겨야 하기에 아래입니다. 주교와 사제와 교우는 이 세상을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도반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늘 성령강림 때의 새로움과 활력을 유지하고 역사 속에서 늘 거듭나도록 누구보다도 애쓰시는 분이 주교와 교황이라고 믿습니다.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정제천 신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정체천 신부 제공
당시 교황은 정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 정 신부가 유명해져서 나중에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고는 '신부님, 옆에 계신 이 분은 누구신가요?'라고 묻게 될 거야!"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먼저 2014년 8월 교황 방한 당시 대전월드컵경기장을 향해 가는 차 안에서의 일을 이야기해 드릴게요. 교황님에게 당신과 동갑내기인 미국 예수회원 고(故) 존 메이스 신부님의 소감을 전해드렸습니다. 2013년 3월 메이스 신부님을 만났을 때, 그분은 "교황님이 선출되신 지 일주일밖에 안 되지만, 내가 신학생일 때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선한 희망과 영감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고 하셨지요. 교황님은 이 말씀을 듣고 즉시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에 사제품을 받은 첫 번째 교황이라는 것입니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매우 단호한 태도로 말씀을 하신 그 장면이 제게 인상 깊게 남아 있습니다.

사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한 지 이제 50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공의회 정신이 이미 교회 생활에 잘 스며들었고, 쇄신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끈 두 개의 원리는 '원천으로 돌아가기'와 '아조르나멘토'(현대화, 오늘에 맞춤)입니다. 복음선포가 동시대인들에게 의미 있게 되려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그들 수준에 맞게 해야 합니다. 전례와 건축 양식, 교회에 필요한 조직 구조와 같은 '하드웨어' 분야는 상당히 여기에 접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즉 내적인 운용 원리는 ‘이만 하면 됐다’고 하는 수준이 있을 수가 없지요. 교회에 숨을 불어넣는 일은 심장 박동이나 혈액 순환처럼 쉴 새 없이 작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까지 하면 된다', '어느 수준이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완성을 향해 언제까지나 계속해 나아가야 하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르면, 신학과 전례 생활, 교구와 본당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 생활은 완성을 향해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이지 '완성되었다', '내가 답을 가지고 있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입니다.

교황님이 추진하는 바티칸 은행의 돈세탁 문제와 아동 성추행에 대한 과감한 조치, 교황청 조직 개편, 교회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와 과정의 쇄신을 위해서 전체 교회가 참여하는 ‘시노달리타스를 위한 시노두스’를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하드웨어를 바꾸고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자체가 말랑말랑하고 유연해져야 하는 것이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촉발된 실험정신이 초래한 혼란과 불안정을 안정된 기조로 바꾸고, 그동안의 신학적 시도와 노력을 종합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이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더 중하냐'의 물음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불리기를 바라면서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하신 예수님을 모시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교회를 수호'하려는 생각보다,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려는 열린 자세가 더욱 교회다운 교회가 되게 합니다.

 

▲ 교황님이 10년간 보여준 행적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게 무엇인가요?

2013년 교황으로서 첫 방문지를 난민들의 아픔을 담고 있는 람페두사 섬으로 선택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습니다. 또 길을 가시다가 차를 세워서 나환우의 이마에 입을 맞추시는 모습과 예루살렘을 방문해 '통곡의 벽'에 손을 얹고 기도하시는 모습, 이웃 종교인과의 만남과 교류에 개방적인 태도는 '모든 이의 모든 것'인 하느님을 전하기 위해 어떤 장애라도 뛰어넘고자 하는 '하느님의 사절'다운 충직함을 잘 보여주십니다.

그런가 하면, 마피아의 본거지인 칼라브리아 지역을 방문해 마피아를 파문한다고 선언하신 것은 그분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일대 사건입니다. 그때 "악을 따르는 자들과 교감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이냐시오 성인의 식별과 선택의 대원칙을 상기시켜 줍니다. 식별과 선택은 선과 더 나은 선 사이의 선택을 위한 것이며, 악은 식별과 선택의 대상이 아닙니다. 악은 애초부터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거죠.

아시아의 첫 방문국으로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이 아니라, 꽃을 피워나가는 분단국가 대한민국을 선택하신 것도 인상 깊은 일이었습니다. 차량 순회 때에 어린아이들을 거절하지 않으셨고, 아이들 역시 울지 않고 그분에게 잘 안기곤 했습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리시고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사랑하신 삶의 태도를 철저히 닮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당시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정제천 신부와 함께 대전월드컵경기장을 걷고 있다. 정제천 신부 제공

 

 


▲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성이 있다면,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통합의 영성, 즉 '덧셈의 영성'이 교황님의 특징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론과 실천, 가르침과 배움이 통합돼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님은 여러 곳을 몸소 방문하여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여러 회칙들을 적절한 시점에 반포합니다. 일회적인 방문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이고 이론적인 뒷받침을 병행하여 제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전문가들이나 이웃 종교인들과의 만남에서 보여주듯이 교황님은 남의 의견을 경청하는 분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배제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는 덧셈의 영성을 몸소 보여줍니다.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세상과 이웃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할지를 삶으로 보여주는 좋은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앞으로 기대하는 교황님의 행보가 있으신지요?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교회의 일관된 화두는 “Ecclesia semper reformanda”(교회는 늘 쇄신돼야 한다)가 아닐까 합니다. 교황 23세가 소집하고, 바오로 6세가 마무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중요한 결실이었지요. 그동안 우리 교회가 공의회 정신을 완수하였다고 생각하고 방심하였을지 모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다시금 공의회 정신에 대한 우리 관심을 환기하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저는 교황님이 참여해 펴낸 책 「세월의 지혜」를 번역하면서 교황님은 '계획이 다 있으신 분'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명품은 디테일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지도자가 거시적 안목과 함께 미시적 디테일을 겸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교황님은 이 두 가지를 겸비한 분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지요.

작년 3월 교황님이 7년 동안 준비한 교황청 직제 관련 새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를 공포하시는 것을 보고 더욱 확신하게 됐습니다. 거시적인 안목과 함께 사목적 소양을 겸비한 큰 지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느님이 맡기신 일을 잘 수행하시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교황님은 말씀을 마칠 때마다 항상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하고 부탁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슨 나쁜 일을 하신 것도 아니면서, 수많은 적의 공격을 받아 십자가형에 처해지셨습니다. 교황님도 예수님의 '참다운 제자'로서 어려움을 느끼신다고 합니다.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당신을 로마로 부르실 때, 교황님이 회의 분위기가 무겁다면서 “논쟁을 하더라도 웃으면서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교님은 웃음을 선사하십니다”라고 하셨답니다. 저도 그 말에 공감합니다. 끝으로 이 소감을 나누고 싶습니다. “이 시대에 프란치스코 교황님 같은 분을 모신 우리는 행복합니다.”

정리 =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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