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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수녀님의 거짓말(김수나, 에우프라시아, 한평책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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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2, 1989년 12월 17일 목포 산정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붉은 벽돌의 아름다움 위로 고통스러운 예수님 상을 보았습니다. 제대 양쪽으로 크게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의 반짝거림을 보면서도 마음으로는 성가 ‘수난 기약 다다르니’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까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8년을 성체를 모시지 못하며 매주 다녔습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면 냉담한다고 세례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당은 강제로 다녔습니다.

여상 2학년 때 보육원 운영자가 수녀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수건으로 수녀님 놀이도 했는데, 수녀님이 우리 집 운영자라는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중학교 때 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수녀님들께 인사도 시켰습니다. 돈 보스코 성인은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원장 수녀님은 그렇게 저를 특별히 예뻐했습니다.

그때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는 주산, 부기, 타자 급수를 딸 수가 없었습니다. 3학년이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희망 없이 세월을 보내다 수녀님이 오셨고, 대학교 교수 신부님을 후원자로 소개해 주셨습니다. 사무실에 불러 신부님과 인사를 나누게 했습니다. 신부님은 묻지도 않았는데, 수녀님이 “우리 수나 세례 받았어요”라고 한 말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세례명을 ‘안나’로 지어두고 있었는데, 신부님은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 계기로 교리공부를 시작했고 몇 개월 후 세례를 받았습니다. 고3 1학기 주산 2급,타자 1급, 부기 2급을 전부 땄고, 2학기 첫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신부님은 언니와 함께 사는 근로청소년아파트에 가스레인지를 달아주셨습니다.

신부님은 일 년에 두 차례 명절 전화를 주셨습니다. “수나야 잘 있냐, 몸은 건강하고? 언니는? 동생은? 그래, 건강해라.” 간결한 말의 사랑은 제가 어느 해부터 명절이면 해외여행을 가면서 끊어졌습니다. 도움을 주시며 말하지 말라는 말을 꼭 하셨습니다.

서울 은평구에서 최근까지 운영했던 책방을 지난 1월에 종료했습니다. 수녀님께 다녀왔습니다. 헤어질 무렵, “수녀님 생각할 때마다 저 세례도 안 받았는데 신부님께 세례받았다고 말한 일이 생각이 난다”라고 했습니다.

“나는야 우리 수나를야, 신자 아니면 안 도와주실 줄 알고야, 그렇게 말이 나와부렀다!”

‘글 마감’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는데, 수녀님의 거짓말 덕분에 저도 마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는 엄마 없니?” 영화 ‘마더’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저에겐 먼저 말하고 나중에 지키는 엄마 수녀가 있습니다.

책 속 문장. “여자는 소년을 보자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 정말 반갑구나. 여자는 가끔 신에 관해 말하곤 했다. 소년은 신과 말을 하려 했으나, 가장 좋은 건 아버지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실제로 아버지와 말을 했으며 잊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신의 숨이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건네진다고.”(「로드」/저자 코맥 매카시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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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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