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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나는 너를 안단다 (김수나, 에프라시아, 한평책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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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중학교 졸업 후 일을 하며 야간학교에 다녔습니다. 새 학기가 되면 언니는 저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음료수를 들고 왔습니다. 우리 동생 잘 부탁한다고.

언니가 결혼하면서 서울에 왔고, 부자동네에 살아야 부자 된다고 강남구로 왔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 논현동성당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집 나무들이 있던 골목길을 따라 성당에 올라가는 길은 정겨웠습니다. 어린 시절 봤던 수녀님이 저를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매주 미사 후에는 단원들과 치킨에 맥주를 마셨습니다. 보좌 신부님이 회합 중간에 축복을 하러 오셨습니다.

사회생활은 문화예술을 누리게 도와주었습니다. 점점 취미생활에 몰두하게 되었고, 주말조차 성당에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30대 중반, 인생이 허무했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해됐습니다. 어느 날 사무실 근처를 걷다가 오래전 보좌 신부님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변 대치3동본당 주임 신부님으로 계셨습니다. 길에서 이야기를 나눈 신부님은 성당을 안 다니고 있는 저를 마침 그날 연습 모임이 있는 본당 성가대로 데리고 갔습니다. 성가대 단원들이 와인도 잘 마시고 공연도 보러 다닌다고. 제가 와인과 오페라에 푹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성가대 지휘자님은 제 노래 실력은 알지도 못한 채 너무나 반겨주었습니다. 성실하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1년간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조심조심 입만 벌리며 성가대에서 함께 하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좋으신 수산나 지휘자님은 단원 머릿수만 채운 저를 아주 잘 챙겨주었습니다.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간다는 정진석 추기경님 말씀을 귀에 새겼습니다. 견진성사를 받은 후로 미사에 참여하면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논현동성당에서 미사에 참여하고 출근했습니다. 신부님의 강론은 나를 위한 것 같았습니다. 미사가 끝난 후 성당 마당에서 배웅하는 신부님의 눈빛에서 ‘나는 너를 안단다’라고 말하는 듯한 예수님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점점 허무한 마음에 많이 시달렸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미사에 참여하고, 묵주의 9일 기도를 바쳤습니다. 어느 날 꿈에서 무척 시달리다 아침 미사에 참여를 못 하고, 퇴근 후 저녁 미사에 가게 된 날, “나는 너를 친구라고 부른다”(요한 15,12-15 참조)라는 구절이 사라지지 않아 미사가 끝난 후에도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자매님 기도하러 가실래요?” 누군가의 작은 음성에 이끌려 지하 소성당으로 향했습니다. 5월 성모의 밤 행사였습니다. 성모님께 꽃과 초를 봉헌하러 나가서 순간 쓰러져 부축을 받고 자리에 돌아와 엎드렸습니다. 쏟아지는 눈물 속에 저의 어린 시절의 상처들이 주르륵 지나갔고, 고개를 파묻고 구석에 쭈그려 있는 어린아이의 거친 등짝으로 파랗고 하얀빛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점점 벗겨지는 껍질을 보았습니다. 제가 어디에 있는지 아시는 주님은 거리의 나를 교회로 데려왔습니다. 저를 다시 서게 해주셨습니다.

“아버지 당신이 필요합니다.”(「포르투갈의 높은 산」 중 159쪽/저자 얀 마텔/출판 작가정신)



김수나(에우프라시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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