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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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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의 일꾼들 방북단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김정일의 하수인들 북으로 돌아가라”….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2001년 민족공동행사 참석차 북한을 방문했던 우리(337명)는 21일 김포공항을 통해 귀환하자마자 이렇게 상반된 플래카드를 보며 갈등의 골이 이토록 극명한 데 대해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원래는 14일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장소 문제로 정부의 방북 허가가 상당히 늦어짐으로써 일정은 하루 늦게 시작됐다. 북측이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에서 행사를 개최하겠다는 기본 입장을 고수한 데 반해 남측에서는 장소를 바꿀 것을 촉구했고 이는 양측 정부의 통일정책에 관한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곡절 끝에 하루가 늦은 15일 예정보다 상당한 시간 늦게 평양에 도착했음에도 북측은 “참석은 안해도 좋으니 참관만이라도 해달라”는 식으로 요구해왔다. 이에 남측 추진본부 집행부가 평양 일정을 논의하는 사이 대표단의 3분의 1 가량은 개막식 행사에 따라가고 만 사태가 발생했다. 이것이 큰 파문을 일으켰으니 다음날 아침 서울에서 전해온 소식은 나라 안이 온통 들끓는다고 했다.

방북기간 중 천주교 신자들은 남측 단장을 사제가 맡고 있는 만큼 그분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여러 모로 조심하며 개·폐회식에 나가지 않는 쪽으로 자제했다. 그런데 이날 뿐만 아니었다. 우리가 북에 체류하는 동안 어떤 사안이든지 남북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일정이 늦어지는 수가 허다했고 개막식 역시 남측 대표단의 참석을 기다리면서 일정을 늦춘 사례다. 방북 첫날 저녁 만수대와 양각도 호텔로 나뉘어서 열린 북측 주최 만찬행사 역시 상당히 늦은 시간에 시작돼 하루 건너 이틀에 걸쳐 저녁 식사를 하는 꼴이 되기도 했다.

북한 텔레비전은 밤 10시에 마감뉴스를 내보내고 10시30분이면 만화영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방송을 마치는데 15일과 16일에는 마감뉴스 후에도 대형행사 내용을 요약한 프로그램을 보여주더니 다음날에는 1945년 8월 광복 직후 미군정으로부터 ‘건국준비위원회’ 결성을 의뢰 받으면서 해방정국의 조명을 받았던 몽양 여운형의 일대기를 북측 시각으로 해석해 제작한 영상물을 이튿날 새벽 1시까지 방송했다. 다분히 이번 남측 대표단을 의식해서 송출한 것으로 보였는데 몽양이 평양을 방문한 다음 북측에 기울게 되자 미군정이 그를 암살했다고 하는 것을 골자로 한 내용이었다. 17일에는 만경대 김일성 생가와 지난해 10월10일 개통한 평양-남포간 왕복 10차선 고속도로인 ‘청년영웅도로’ 시주(試走)에 이어 동명왕릉과 국립도서관격인 인민대학습당을 둘러보았고 18일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태어났다고 하는 백두산의 ‘밀영’ 등을 19일에는 묘향산 국제친선관람관을 안내받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21일 발표한 공동보도문의 내용과 같이 이번 방북을 통해 남과 북 해외의 대표들은 6·15 남북공동선언을 적극 실천하기로 했고 이 선언의 정신에 따라 평화통일과 민족의 안전을 위해 민간 단체들이 적극 연대해 나가기로 하는 한편 16일에는 일제만행과 역사 왜곡 책동을 폭로하는 남북 공동 사진전시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17일에 이어 19일 묘향산에 가기에 앞서 장충성당을 찾은 가톨릭 신자들은 북측 신자들과 함께 연중 제20주일 미사를 봉헌했다. 주례사제인 김종수 신부는 “‘나는 불을 지르러 이 세상에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이날 복음을 묵상하는 강론을 통해 “구약시대 ‘말씀’을 의미했던 불이 이제는 평화와 통일의 불씨가 되어 타오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했다. 미사 끝에 여규태 한국평협 회장은 9월16일 서울에서 열리는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 순교자 현양 신앙대회 소식을 전하며 북측의 모든 신자들이 모두 참석해 주기를 바란다면서 “이 모든 것을 다 이룩할 수는 없지만 두번 세번 자주 만남으로써 차츰차츰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며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장충성당 공동체와 북녘의 모든 형제 자매들이 하느님 뜻 안에서 건승과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고 맺었다.

이번 방북기간 중에 종교 문화 예술 경제 노동 농민 청년 여성 학술 언론 등 각계각층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협력과 교류사업을 적극 활성화하기로 한 약속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비록 이번 방북은 많은 논란과 파문을 일으켰지만 겨레의 비원인 통일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꾸준히 민족화해를 향한 북쪽과의 대화와 교류 그리고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는 북녘 형제돕기운동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나가야만 할 것이다.

최홍준 한국평협 사무총장 방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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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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