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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신앙선조들에 대한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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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교회에서는 교회자료들이 때가 되면 보존되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폐기 처분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에 나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머물며 안식년을 보낸 적이 있다. 그곳에 있는 신부님들의 친절하고 검소한 삶과 교회 문화를 아끼고 보존하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특히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과 같이 루브르 박물관으로 그림 구경을 가고 샤르트르 대성당에 가서 유리화를 보면서 감탄하던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여겨진다.
파리 외방전교회 1층에는 20평 정도 되는 작은 순교자 박물관이 있다. 그 곳에는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선교사들의 유품과 선교지의 유물들이 있다. 그 유물들 가운데는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 등 우리 나라 교회와 관련된 것들도 한쪽에 잘 전시되어 있다. 또한 박물관에는 영어와 불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등의 자동 안내 방송 장치가 있어서 박물관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이 순교자 박물관은 한 쪽 구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1층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즉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식당이 있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순교자 박물관이 있다. 매일 식당을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박물관 앞을 지나가게 되었고 가끔은 들어가서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었다.
파리 외방 전교회에는 순교자 박물관만이 아니라 도서관 고문서실 등에 선교사들의 소중한 역사 자료를 보존하고 있었다. 선교사들이 보낸 편지 한 장 조차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외방 전교회 건물 가운데서 가장 좋은 방은 자료실과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러나 신부님들이 살고 있는 공간은 오히려 좁고 불편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선배 선교사들의 자료를 정리하고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은 생활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일처럼 비쳐졌다.
지난 2월 서울대교구 직속 평화화랑에서는 「1978~2001 주보 사랑전」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회를 마련한 것은 주보도 매우 소중한 교회 자료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주보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주보는 1978년부터 통합이 되었고 그 전에는 각 본당별로 발행이 되었다. 통합되기 이전의 각 본당의 주보는 교구 홍보실에도 없어서 전시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유럽 교회에서는 교회 자료들이 때가 되면 보존되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때가 되면 폐기 처분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100~200년 후에 오늘날의 교회사를 쓴다면 자료의 부족 때문에 공백으로 메워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자료를 보관할 공간의 부족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자료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자료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성당이나 교구의 사무공간을 줄여서라도 자료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자료실이나 교회 박물관은 단순히 지난 사람들의 유품이나 유물을 전시하는 죽은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애썼던 순교자들과 신앙선조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인 것이다.
이 땅은 우리의 선조들이 살았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으며 앞으로 후손들이 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서 대부분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순교자들이나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내어놓은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파리 외방전교회의 신부님들이 하는 일들을 옆에서 지켜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웅모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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