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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리 수녀의 아름다운 노년 생활] (27) 나누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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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지인을 만나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직접 농사를 지은 것이라며 과일 상자만큼 큰 박스를 건네주었습니다. 순간 고마운 마음보다 ‘전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가야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들고 가지?’하는 생각에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이 마음을 알아챈 지인은 “농사를 직접 지어서 수확한 것이라 많이 드리고 싶은 마음에 담다 보니 크기가 커졌어요. 갖고 가기 불편하실 거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는데, 안 가져가도 괜찮으니 마음 쓰지 마세요”하며 미소 지었습니다. 상대의 정성보다 제 마음을 먼저 살폈다는 부끄러움에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농사짓는 수고에 비하면 이 정도의 수고로움은 행복한 고민이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황급히 상자를 안고 지하철 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걸을수록 짐의 무게에 지쳐서 계단 한쪽 귀퉁이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짐을 들어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반가운 마음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며 고개를 들었더니 머리카락이 하얗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젊은 사람이 어르신의 힘을 빌린다는 것이 죄송했지만, 짐을 함께 들으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져서 환승구간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전철을 타고 서너 구간을 지났을 즈음에 어떤 엄마가 아이를 안은 채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고 전철에 올랐습니다. 전철이 출발하자 그는 중심을 잡느라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을 뿐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 조금 멀찍이 떨어져 앉아계신 할머니께서 손을 저으며 말했습니다. “새댁 여기 와서 앉아요. 젊은 새댁이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겠구먼.” 아이들의 엄마는 미안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어떤 학생이 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해 주자 썰렁했던 전철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따뜻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철을 타고 오는 내내 짐을 들어준 어르신과 연세가 있으심에도 기꺼이 자리를 양보해주신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바쁜 발걸음을 옮기느라 누군가의 어려움이 보지 못합니다. 혹여, 보인다 해도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무관심하게 행동합니다. 이렇게 각박해지는 세상 안에서 관심을 가지고 손을 내밀어 준 그 한 사람이 청년도 중년도 아닌,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라 그날의 감동은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도움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과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 많이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고,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늘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남을 위해 나눠주고 베풀어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행복감과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합니다. 몸이 건강하고 사회경제적 자원이 많으면 노년기의 안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삶에 대한 높은 행복감과 만족감은 꼭 그런 여건들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행복한 노년기를 보내는 길은 나이 듦에서 오는 다채로운 잠재력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노년기에 경험하는 신체적 기능의 손상 등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며 노년이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를 찾고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년에도 삶의 목적성을 가지고 사회에 자신이 무언가 이바지하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활기차고 행복한 노년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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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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