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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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에는 고요와 침묵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28. 고요와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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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스마트폰과 스크린에 빠져 사는 일상에 익숙해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수녀들이 강가에서 고요 속에 기도하고 있다. OSV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익숙함’ 아닐까? 익숙함은 ‘왜?’를 묻지 않는다. 일단 편하고 자연스럽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침과 밤 만큼은 ‘고요와 침묵’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스마트폰 사용 다이어트 방법을 모색했었다. 그때 나는 밤 9시부터 아침 9시까지 스마트폰을 일절 만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도 스마트폰이 부적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어디서나 고개를 숙이고 스크린에 빠져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익숙해지면 편하고, 편하면 자연스럽고 그리고 당연하니깐.

새로움의 반복은 루틴이 된다. 루틴엔 이유가 없다. 그런데 반복은 지루하다. 디지털 연결망은 쉽게 흥분하고 설레게 해주는 ‘새로움’으로 넘쳐난다.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에 새로움이 루틴이 된다. 그래서일까? 잠시만 ‘멈춤’ 상태에 있어도 심심하다. 그렇기에 ‘고요와 침묵’은 마치 죽어있는 공간처럼 느껴지고 분주한 산만함은 살아있는 일상이 된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 한병철은 “고요와 침묵은 수직적 질서를 전제하는 반면에 디지털 소통은 수평적”이라고 한다. 디지털 세상은 고요와 침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고요와 침묵은 하늘과 땅의 질서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질서를 마주하는 공간이다. 관조적이고 심층적이며 주의집중이 요구된다. 고요와 침묵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디지털 연결망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산만함의 익숙함에 길들여지고 편안함을 느낀다.

수도원에선 적어도 밤 시간과 아침 시간에는 고요와 침묵의 질서 안에 들어간다. 물론 고요와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차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전히 하느님의 현존과 나의 존재에 깨어있음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요즘에는 봉쇄수도원을 제외하고는 많은 수도원이 고요와 침묵의 수직적 질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거실의 텔레비전과 침대 위의 스마트폰으로 인해 고요는 지루함으로, 침묵은 외로움으로 밀쳐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사실 고요와 침묵은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차원에서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뇌과학적으로도 우리의 몸과 마음의 가장 큰 에너지 자원의 원천은 바로 고요와 침묵에서 온다.

고요함과 평화로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면 수면 중에 우리의 뇌는 하루의 기억들을 잘 정리해서 장기기억 저장고로 보내어 기억의 연결망을 짠다. 하지만 디지털 연결망에서 장시간 빠지게 되면 교감신경을 자극해서 호흡이 빨라지고 긴장하게 된다. 그러면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증가하고 수면을 방해한다. 당연히 기억저장이 어려워지고 부정적인 감정이 활성화되면서 기억의 뇌 기능이 떨어진다.

아침 시간은 어떨까? 아침 기상할 때 “와, 기분 좋다! 신 난다!”하고 일어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대체로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수치가 떨어져 있기에 예민한 상태이다. 그렇기에 아침의 뇌를 잘 보살피지 않으면 짜증과 분노로 그날 하루는 힘들어진다. 반면에 아침 공복 시에는 뇌 회전이 빠르고 집중이 잘되어 이때 내가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하루가 결정된다. 수도자들에겐 아침의 묵상과 미사 전례가 매우 중요하다. 고요와 침묵의 여백을 만들어주는 아침 묵상은 뇌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활동하게 해준다. 아침 기도로 평화롭게 시작할 수만 있어도 뇌는 도파민 경로를 만들어주고 하루의 에너지 자원을 충전해준다.

익숙함과의 결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스마트폰을 잡는 익숙함과 결별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잠은 육체적인 죽음을 통해 영적으로 새로 나게 해준다. 잠을 자면서 뇌는 그 날 기억할 중요한 내용을 분류하고 응고화해서 다음날 새롭게 시작할 준비를 해준다. 아침에 눈 뜨면 스마트폰부터 잡는 익숙함과의 결별은 시간의 여유를 만들어준다. 그 자리에 들어선 묵상과 기도는 마음의 회복력을 높여주고 작은 자극에도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디지털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고요와 침묵이 절실한 이유다.


영성이 묻는 안부

요즘 깜박깜박하시나요?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요? 그런데 비교적 젊은 나이인데도, 깜박 잊는 경우가 많아 이를 ‘디지털 치매’라고도 해요. 여기에서 치매는 디지털 기기 과의존으로 인해서 정보기억이 어려워 생겨난 건망증을 말해요. 디지털기기에 의존할수록 기억을 저장하는 해마기능이 과부하가 걸려 버퍼링이 일어난 상태인데요. 물론 뇌의 가소성의 원리에 의해 나이가 들어도 훈련만 잘하면 기억저장고를 잘 지킬 수 있다고 해요. 특별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밤과 아침 시간에 하느님 현존에 깨어 집중하기만 해도 기억의 뇌, 해마가 안녕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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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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