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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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젊음을 돌려주겠다고 하면 나의 선택은?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29. 신체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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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한 아름다운 성찰이 필요하다. 사진은 할머니가 손녀와 함께 대림환을 만드는 모습. OSV


근력 운동으로 신체나이를 줄여가는 한 중년 남성이 러닝머신 위에서 뛰고 있다. “작년에 마흔둘, 올 초엔 서른다섯, 지금은 스물여덟, 나의 신체나이는 얼마나 더 젊어질 수 있을까?”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리고 중년 남성에게 한 여성이 다가와 “총각”이라고 부르자 자기애가 폭발하는 흡족한 미소로 광고는 마무리된다. 이 영상은 성공시리즈를 꾸준히 광고에 담아왔던 한 기업의 광고인 ‘신체나이편’이다.

광고는 그 시대 사람의 심리와 욕망을 잘 반영하고 또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광고는 단순히 소비자에게 구매 욕구만을 자극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광고 속 모델과의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 광고 모델의 완벽한 신체 이미지에 익숙해지고 나 자신의 신체 기준을 높게 설정한다. 그러는 사이 나도 모르게 내 신체에 대한 존중감을 떨어트리기도 한다.

누구나 건강을 잘 유지해서 ‘젊음’을 조금이라도 더 연장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노화를 지연시키는 차원을 넘어 아예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싶어 한다. 최근에 45세인 미국의 억만장자가 연 26억 원을 투자해 신체 나이 37세로 돌아갔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30명의 의료진과 건강전문가로 이루어진 팀의 지도 하에 10대 후반까지 모든 기능을 돌려놓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고 한다. 불로장생을 꿈꾸는 그는 “노화가 불가피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말한다. 허황된 것 같지만, 인간 불사의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과학자와 미래학자들의 예측들도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의 천재 물리학자이며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2045년이 되면 특이점이 와서 인간의 수명을 무한 연장할 수 있고 결국에는 늙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버드대 유전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싱클레어(David A. Sinclair)의 저서 「노화의 종말」에서 “노화는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노화도 일반 질병처럼 치료하면 젊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말이다. 과학과 의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보면 불사의 세상이 황당한 예측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에 애원이란다.” 오래전 부모님 금혼식 때, 나의 아버지는 아픈 몸을 추스르고 마이크 잡은 손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 이 노래를 불렀었다. 식민통치와 전쟁으로 인한 궁핍함으로 ‘젊음’은 사그라지고 이제 좀 살아볼까 했는데 호호백발 노인이 되어있으니 원통하다는 아버지의 한탄처럼 느껴져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누군가 나의 아버지에게 젊음을 돌려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덥석 받을 수 있었을까? 나에게 누군가 신체나이를 20대로 돌려주겠다고 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욜드(young old), 요즘 신조어다. 젊은 노인, 나이는 숫자이고 젊어 보이는 신체나이가 진짜란 말일 게다. 노년을 중년처럼 젊게 하는 성형, 주름과 잡티제거는 기본이고 얼굴 전체 주름을 펴는 수술부터 얼굴을 들어 올리는 안면거상술까지 등장해 10년 세월을 되돌리는 것은 문제없다고 한다. 미디어 광고는 건강과 미용에 대해 맹목적으로 눈을 멀게 하는 전략을 펼친다. 늙으면 이제 끝이니 주머니를 열고 돈을 쓰라고 유혹한다. 그러면서 너도나도 신체나이를 한 살이라도 돌려받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는 사이 마음과 정신의 나이는 너무 빨리 늙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젊음을 유지하면서 죽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스 신화의 신들처럼 엄청난 힘을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면서 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보다 더 잔인한 죄를 지으며 복수, 저주, 미움, 전쟁, 살인의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늙음’만이 할 수 있는 가슴 저린 애달프고도 행복한 경험도 없을 것이다. 오지 않는 젊음에 대한 애절한 향수와 감미로운 낭만의 소리도 사라질 것이다. 나이 든 자만이 낼 수 있는 주름 파인 목소리, 최백호의 노래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느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곳에 대하여.”


영성이 묻는 안부 

‘회춘성형’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최근 70세 이상 고령의 성형외과 수술 건수가 크게 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해요. 사람은 결핍이 있으면 채우고 싶은 욕망도 커지기 마련이죠. 그러니 늙어갈수록 젊어지고 싶을 거고요. 그런데요. ‘젊음’을 욕망하면서 ‘늙음’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요. ‘늙음’에 대한 이야기가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종교학자인 정진홍 교수는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일흔이 넘으면, 나는 내가 신선이 되는 줄” 알았고 “온갖 욕심도 없어지고, 이런저런 가슴앓이도 사라지고, 남모르게 품곤 했던 미움도 다 가실 줄 알았다”고 해요. 그런데 “일흔이 되고 보니 욕심도 가시지 않고 가슴앓이도 삭지 않고, 미움도 여전하고 고집은 신념이란 이름으로 더 질겨지고” 있다는 거죠. 마음과 정신의 연륜을 느끼게 해주는 이러한 ‘늙음’에 대한 아름다운 성찰로 ‘늙음’이 친근한 우리의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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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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