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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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쾌감 갈망할수록 스트레스와 불만 쌓인다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40. 우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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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닌 우울증이라는 생각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행복의 이유를 어디서 찾고 있는 것일까. OSV


오래전 외국에 나가면 국내 대형 간판만 봐도 가슴이 설렌 적이 있었다. 도로 위에 우리나라 기업의 차가 달리면 나도 날아갈 듯 뿌듯했으니 말이다. 국제모임에서 외국인에게 ‘대장금’이니 ‘겨울연가’와 ‘주몽’이라는 드라마 이야기만 들어도 어깨가 자연 으쓱했다. 요즘은 K-팝, K-드라마와 영화, K-패션, K-뷰티, K-푸드 그리고 K-좀비와 악귀까지도 K-콘텐츠로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변방인 아시아,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르던 작고 조용했던 한국이 다이내믹 코리아로서의 자랑스러운 유전자로 세계 곳곳에서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있다.

하지만 빛이 밝으면 그림자는 더 짙은 법인가 보다. 자살률은 OECD 부동의 1위이고 행복지수는 꼴찌다. 더욱 애통한 일은 젊은 세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사실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한류 열풍으로 글로벌 신드롬이 일어나는 풍요롭고 화려한 시대를 살지만, 어린이와 청소년 삶의 만족도가 꼴찌라는 것이 너무도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나라가 유독 자살률이 높은 이유를 우울증 치료율이 다른 나라보다 낮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감기약 먹듯 아무 병원에 가서 정신과 약을 처방받으라는 것이다. 우울증을 흔히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그런데 감기는 잘만 버티면 지나간다. 하지만 우울증은 ‘의지’로도 ‘정신력’으로도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심약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울증은 유전학적, 생물학적, 심리학적 영향력과 삶의 스트레스가 결합된 결과이며, 자살행위의 원인은 심리사회적 스트레스에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죽을 만큼 고통스럽고 공포에 싸이게 하는 우울증은 왜 우리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을까? 한류 열풍으로 전 세계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왜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까?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인간의 행복은 생화학적 조건에서 온다”고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범죄 원인 또한 생화학적 행복 추구에 있다는 것이다. 생화학적이란 것이 순간이고 찰나다. 그렇기에 술, 담배, 마약 등이 잠시의 행복한 감정을 주는 것 같지만, 그 기분은 잠시, 그렇기에 헤어날 수 없는 ‘중독’에 빠진다. 자살의 원인이기도 한 우울장애 역시 생화학적 도움으로 회색빛 기분을 잠시 밝은색으로 돌려놓아 기분을 올려주기는 하지만, 그 또한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내부에서 오는 불쾌한 감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불편한 감각을 못 견뎌 하고 바로 밀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스마트폰을 본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마약을 복용한다. 비싼 케이크를 먹고 한 달 노동력으로 명품을 두르기도 하고, 일 년 노동력으로 자동차를 굴린다. 그런데 여기서 오는 쾌감과 만족감은 잠시, 갈망은 그 이상으로 커지기 마련이다. 유발 하라리는 더 많은 쾌감을 갈망할수록 그만큼 더 많은 스트레스와 불만을 느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니 진짜 행복을 원한다면 그 쾌감을 놓아 보내라는 것이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닌 우울증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행한 환경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행복은 무엇일까? 쾌감을 행복이라고 착각하고 내려놓지 못해 더 우울한 것일까? 경제와 문화강국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불사르다 소진되고 스트레스와 불만으로 우울증이라는 병을 얻은 것일까? 어쩌면 우린 너무도 오랫동안 보이는 것, 입증되어야 하는 것, 수치로 계량화하는 것에 매달려 달려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는 몇 평정도 되어야 하고, 성적은 적어도 몇 등, 자동차 브랜드는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보여주기식 허세가 자존감의 뿌리로 굳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잃고 보이는 것에 집착하다가 병약한 인간이 되었을까? 보이지 않아서 더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너무도 오랫동안 잊고 산 것은 아니었을까? 보이지 않지만 변하지 않는 가치, 그래서 오래도록 부모와 자녀세대를 엮어주는 공동의 가치를 너무도 오랫동안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성이 묻는 안부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울한 사람의 시간은 느리고 때론 멈춘 것처럼 매우 무섭다고 해요. 무엇보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잃은 상태라는 거죠. 워싱턴대학 신경과학자들 연구팀에 의하면 의미 없이 사물을 보았을 때 뇌의 반응을 보면 후두엽 시각영역 중 일부만 활성화된다고 해요. 그러나 같은 것이라도 의미 있게 해석하게 되면 뇌의 새로운 경로가 열린다는 것이죠. 유의미하게 읽어내는 순간, 뇌 신경세포의 활동이 두 배 혹은 세 배까지 증가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에 가치와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정신세계가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요.

출산율이 꼴찌인 우리나라에서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것, 그리고 그 숫자가 세계 1위라는 것, 너무도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 현실 앞에 무릎 꿇고 통렬히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보이는 것, 수치로 계량화되는 실용과 효율성에 갇혀서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참교육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성찰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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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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