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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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느낄 때, 나와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47. 연말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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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분위기가 시끌벅적 고조될수록 고립감이 더해지면서 외로울 때가 있다. ‘고독한 군중’처럼 말이다. 우린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OSV

우리나라에서 술 소비가 가장 많은 시기가 12월이라고 한다. 유독 사건ㆍ사고도 잦고 극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시기도 연말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12월은 가장 행복한 달 아닌가? 송년회, 동창회, 동호회, 친지 모임 등 각종 모임이 이어지고 요란스럽고 분주한 분위기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형형색색의 장식과 아름다운 소품들이 널려있는 것을 보면 한껏 들뜨게 된다. SNS에 올라온 지인들의 각종 이벤트 사진을 보면 모두 다 행복한 연말을 보내는 것 같다. 전광판 광고나 방송에서의 행복한 가족과 연인의 모습, 화려한 각종 행사가 연출되는 12월은 그야말로 축제의 달이다. 사회 분위기만 보면 적어도 12월만큼은 반드시 즐겨야 할 것 같고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나 연말이면 ‘외로움 주의보’에 ‘특보’까지 내려야 할 정도로 ‘연말 우울증’으로 연말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12월, 세밑에 서면 문득 스산하고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회 분위기가 시끌벅적 고조될수록 고립감이 더해지면서 외로울 때가 있다. ‘고독한 군중’처럼 말이다. 우린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은 내면의 결핍 언저리에 딱 붙어 똬리를 틀고 기회만 되면 고개를 쳐든다. 심하게 공격을 당하면 마음의 병으로 치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평소에는 외로움이 심심함이나 지루함으로 찾아온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잠시 혼자라는 느낌을 차단한 것 같다. 그러나 무기력과 우울하다는 기분이 불안과 초조함까지 동반하면서 스마트폰 기기를 더 자주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마음은 허기지고 거짓 배고픔으로 이어지면서 달고 짠 음식을 찾고 술과 마약으로 채우기도 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대니얼 액스트는 “외로움이 자기절제를 약화시킨다”고 말한다. 외로움을 그대로 마주하여 나를 통과시키려면 자기절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주변에는 쉽고 간편하게 외로움을 일시 차단할 수 있는 유혹 거리가 너무도 많다.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조용히 혼자 머물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혼자라는 느낌을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전철 안 사람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있는 모습은 이제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이럴 때 스마트폰은 잘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혼자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마법과 같은 기기다. 누군가 이야기 나누다 그가 잠깐 딴짓을 하거나 전화를 받으면 그 사이를 못 견디고 스마트폰을 연다. 우리는 점점 잠깐의 ‘혼자 있음’을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외로움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감정이 아닌 그냥 내 안에 있는 본성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고 혼자여도 여럿이어도 찾아온다. 그런데 이 외로움은 잠깐 멈춰 바라보고 직면하고 품어주면 자기 성찰이 되고 내면의 고요함으로 흘러들어오는 영적 성숙의 채널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미국에서 영성 공부를 할 때이다. 그다지 등반을 잘하지 못하는 내가 처음부터 하산할 때까지 기분 좋게 오른 산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오르고 싶어 하는 미국 서부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하프 돔이다.

눈까지 와서 만만치 않은 코스였는데도 기분 좋게 등산한 기억이 있다. 낯선 외국인들과 함께 산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난 걷기 수련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어두컴컴한 이른 새벽에 일어나 달랑 주어진 것은 고작 샌드위치 하나와 음료수가 전부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이니 배고픔도 잊었다. 올라갈수록 흰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고 미끄럽기까지 했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하프 돔 암벽 아래에 도착했다. 다른 일행은 자기들끼리 농담을 주고받으며 함께 어울려 올라갔지만 나는 혼자라는 느낌을 느끼면서 내 속도대로 걸었다. 생각해보니 그날 나는 나 혼자라는 사실을 무척 즐겼던 것 같다. 어둠 속에서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가슴 벅찬 행복감으로 마음이 꽉 채워짐을 느꼈다. 분명 그날은 내 영혼이 한 뼘 더 자란 행복한 하루였다.


<영성이 묻는 안부>

외롭다고 느껴질 때, 나와 마주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입니다. 홀로 머무는 것은 나 자신을 음미하고 나의 현존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아름다운 체험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현존도, 이웃의 현존도 반드시 나의 현존을 통과해야 하는데요. 기도도, 사랑도, 봉사도 모두 나의 영혼과 마음에 담아내야 하고요. ‘나’라는 현존을 충만히 누리지 못하면 이 모든 것은 그저 기능적인 일이 되고, 나 자신마저 소외되는 듯 합니다.

12월, 연말입니다. 청춘은 더 멀어지고 이별할 것은 더 많아집니다. 하지만 수많은 이별 가운데서도 오로지 품고 가야 할 것은 나 자신이고 외로움이 아닐까요. 일상에서 찾아오는 외로움, 때론 심심함으로 지루함으로 그리고 자책, 불안, 우울로 오겠지만요. 그때마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으로 회피하기보다 ‘외로움, 너 왔니?’ 하면서 정확하게 이름을 불러주고 마주하다 보면 조개가 모래를 품으면 진주로 변하듯, 그렇게 우리의 일상도 영적으로 빛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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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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