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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양

[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내게 말을 건네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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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자, 성난 바다가 잔잔해졌다.”(요나 1,15)

이 요나서의 말씀은 마치 심청전의 한 대목을 읽는 듯합니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재앙이 두려워 신에게 제사를 드리던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신이 가장 좋아하실 것으로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을 바치는 것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없었기에 생명을 바치는 것이 신에 대한 최고의 경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생명을 바치려니 두렵고, 피하고 싶은 고통이 따르니 희생양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멀쩡히 살아있는 다른 사람을 죽여서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인신제사가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끔찍한 인신제사는 모든 인류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심청전도, 성난 파도가 무섭고 두렵게 풍랑을 일으킬 때 실제로 중국을 오가던 뱃사람 상인들이 바다의 신 용왕에게 바쳤던 인신제사의 원형인 것입니다. 요나의 풍랑 이야기도 같은 내용입니다.

이 같은 이야기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내용들입니다. 남미 대륙에서는 인신제사에 희생된 어린 소녀의 유골이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옛날 그들의 신조차 원하지 않았던 이 끔찍한 희생양의 인신제사가 오늘날까지 버젓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하자 광기에 서린 인간들은 시뻘건 짐승의 눈으로 희생양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찾아낸 희생양이 유다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미치기 시작한 그들은 무고한 수많은 유다인들을 학살합니다. 1923년 일본 간토 대지진이 발생하자 일본인들은 미친 듯이 희생양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찾아낸 희생양은 그들이 강제로 끌어온 조선인들이었습니다. 살육의 짐승이 된 일본인들은 조선 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합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쟁을 일으킨 책임의 피해 보상에 엄청난 부채를 안게 됩니다. 그리하여 국민의 생활은 궁핍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모두가 이성을 잃어버리고 광란의 미치광이 히틀러를 신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미치광이를 필두로 모두가 먹이에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희생양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불쌍한 희생양 유다인들을 무참히 학살하게 됩니다.

친동생을 끔찍하게 살해한 카인의 후손인 인간은 이렇듯 끊임없이 희생양을 찾았고 잔인한 살육의 제사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잔인한 희생양 살육의 첫 시작은 ‘제 탓이오’가 아닌 ‘남의 탓’이었습니다. 

내게 일어난 모든 고통의 상처와 우환들은 내게도 많은 탓이 있었노라고 가슴을 치며 고백할 때,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는 숭고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추호의 잘못이 없다는 착각과 교만에 빠질 때, 이미 인간은 잔인한 짐승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약자인 희생양을 찾은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교육도 희생양을 찾는 교육이었습니다. 반의 시험 점수가 전교 석차에서 뒤지면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늘 희생양이 되어 괴로움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렇듯 희생양을 찾는 끔찍한 짐승의 전통은 직장과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국가가 희생양을 찾기 위해 저지른 폭력과 살인은 더욱 끔찍하였고 씻을 수 없는 눈물의 상처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중세 마녀사냥과 십자군 전쟁에서 보았듯이 종교가 저지른 광기의 희생양 살육은 죄책감을 찾아보기 힘든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가장 잔인한 살인이었습니다.

마침내 인간이 저지른 가장 커다란 희생양 사건은, 인간을 이 끔찍한 죄악에서 구원하러 오신 하느님을 십자가에 처참히 매달아 죽인 사건입니다. 이토록 잔인한 인간들이 저지른 참혹한 살인의 죄 없는 희생양들은 힘없고 빽없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참혹히 십자가의 희생양으로 돌아가신 성금요일, 교회가 참회의 눈물로 바치는 비탄의 노래는 세상 모든 불쌍한 희생양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속죄의 노래인 것입니다. 이제 요나는 다시 말을 건네옵니다.

“무서운 풍랑이 일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모든 선원이 저를 희생양으로 삼아 바다에 던졌을 때, 죽음의 공포가 저를 휘감았지만 바로 그때 하느님 구원의 손길은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분명 생명의 주님과 함께할 때,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도 결코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배광하 신부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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