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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1)

[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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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송하지만, 그 바탕엔 아브라함의 떠남이 자리한다. 그는 길을 떠나는 이들의 조상이다. 히브리어 본문, 12장 첫 문장의 앞 부분만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히브리어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떠남에 대한 명령은, “가거라” (레크, ) 뒤에 이어 “너에게로” 를 뜻하는 ‘레카’ ( )라는 어휘가 첨부되었다. 이는 사실 히브리어 구분에서 매우 흥미로운 표현인데, 일반적으로 떠나라는 명령은, 어휘의 첨부 없이 “레크 ‘ ’ (가거라)”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결국, 뒤에 첨부된 표현은 의도적으로 덧붙여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히브리어에서 잘 쓰이지 않는 이 표현 안에는 어떤 의도와 의미가 숨어있을까.

우선, 뒤에 첨부된 표현과 함께 히브리어 본문을 어휘 그대로 번역해보면, “너에게로 가거라”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이는 아브라함의 떠남이 ‘자신에게로 향하는 여정’이며, ‘내적인 여정’임을 드러낸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했던 명령은 분명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나면서 시작되는데, 그 떠남의 방향이 결국 자기 자신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내적인 여정을 명상적인 수행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그의 여정은 머물러 안주하지 않는 실제적인 떠남이었다. 히브리어 본문의 문장 순서에 따르면, “가거라”라는 명령에 뒤이어 떠남의 대상이 언급된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아브라함의 이 내적 여정은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실제적으로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본문을 유심히 보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하셨던 떠남의 명령이 점진적으로 구체화(명료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고향 → 친족 → 아버지의 집.

즉, ‘고향’, ‘친족’, ‘아버지의 집’으로 언급되는 떠남의 대상은 넓은 범주에서 좀 더 좁은 범주로 좁혀지고 있다. 성경이 전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은 이렇듯 구체적이고 명료하다. 사실, 두리뭉실한 부르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우리의 부르심을 무리화하고 일반화하며 살아가는가. 얼마나 많은 우리의 소명(召命)과 성소(聖召)들은 익명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을까. 함께 걷는 시노드적 여정이 교회 공동체의 본질적인 모습인 것은 맞지만, 우리 각자의 소명은 우리에게 유일무이한 것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주님의 부르심에 고군분투하며 응답했던 한 사제가, 사제단에 속해있는 것만으로 사제 성소에 대한 부르심을 완성했다 생각하는 것. 마음 속 깊은 곳에 울려오는 음성에 응답하여 세례를 받은 한 신자가, 본당의 단체 몇 개 가입하고 나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안주하며 사는 것. 과연 이것이 부르심에 대한 올바른 응답일 것인가, 조심스레 예를 들어본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처음엔 고향을 떠나는 것이라 생각했던 일들이, 성찰을 거듭하여 주변 친척들을 떠나고 아버지를 떠나는 부르심이라는 것을 오랜 시간을 두고 기도하며 깨달았을 것이다. 창세기의 본문은 아브라함의 떠남을 한 줄 문장으로 전하고 있지만, 이는 아브라함 스스로 오랜 시간 동안 성찰했던 것일 수 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 다섯 살이었다.”(창세 12,4) 

그의 나이 일흔 다섯. 모든 것을 버려 모든 것을 얻는다는 이 영적 진리를 깨닫기 위해 아브라함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하게 기도하며 번뇌했을까.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의 모든 발걸음은 분명한 내적 여정이었다. 그의 이내적인 여정은 바로 지금 그 자리에서 아주 명료하게 시작하였다. 상징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떠났던 ‘아버지의 집’은 자신이 머물고 있는 바로 지금 그 자리를 뜻할 것이다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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