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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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시기, 스마트폰 멀리하는 ‘디지털 단식’은 어떨까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56. 셀프홀릭(selfholic)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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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은 온통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아우성이다. SNS는 자기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기 전시관이다. 이에 공동체 경험과 의식도 영향을 받는다. OSV 

오랜만에 반가운 수녀들을 만났다. 유머 감각이 넘치는 한 수녀가 추억이 된 옛이야기를 들려주자, “맞아! 그래, 그때 그랬어!” 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손뼉을 치며 까르르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는 재미있었는데…”하면서 아쉬운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누군가 “요즘 사람들은 그리워할 추억이 별로 없다고 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누구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요즘 세상이 변한 만큼 수녀원의 일상도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전과 달리 함께 모여 이야기하면서 창의적인 놀이도 하고, 함께 소풍 가고 여가를 보내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공동체 풍경이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 어쩌면 현대를 사는 우리가 공동체나 타자와의 관계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욕망이 너무 커진 탓은 아닐까?

대부분 사람은 ‘그때가 좋았지’, ‘그땐 그랬는데’ 하면서 과거를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물론 추억 보정의 효과로 지나간 것을 미화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동시에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리움의 작은 한 조각이 유사한 또 다른 조각들과 맞춰갈 때 더 아름답게 채색되리라는. 예를 들어 어릴 적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먹고 떠들고 놀았던 기억, 혹은 성당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지루함도 버티고 미사에 참여했던 그 시절 추억의 한 조각을 누군가 슬쩍 끄집어낼 때, 또 누군가가 “맞아, 그때 정말 그랬어”하면서 또 하나의 조각으로 퍼즐을 맞춰갈 때 추억은 극대화되고, 그리움은 커져 행복감이 확대된다. 그리고 그리움의 뿌리엔 늘 ‘사랑’이 있어 오늘을 살게 하는 좋은 에너지가 나온다.

그리운 시간은 아늑하게 집처럼 느껴진다. 함께 같은 공간에서 공동의 느낌이란 것이 있었다. 아날로그 시간은 연속적으로 흘렀고, 예측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시간은 원자화, 파편화되고 변화무쌍해서 편안하게 머물 시간도 공간도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불안할수록 더 집중하는 대상은 타인이 아닌 ‘나’가 된다. 정신분석에 따르면, 아이는 태어나면서 리비도(libido, 즐거움을 얻으려는 에너지)가 자기 자신에 쏠린다. 그리고 자라면서 어머니, 혹은 다른 외부 대상으로 옮겨간다. 하지만 불안정 애착으로 불안이 높아지면 다시 그 리비도가 유아기처럼 자신에게 향한다. 더욱이 디지털 기기 사용은 유아기적 자기애를 부추긴다. 디지털 세상은 온통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아우성이다. SNS는 자기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자기 전시관이다. 스마트폰 과다사용이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하는 이유다.

현대는 ‘나르시시즘’을 권하는 셀프홀릭의 사회다. 점점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가면서 양보와 희생이 요구되는 공동체성이 약화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통은 홍수처럼 넘치지만, 공동체 의식은 소멸되고 공동체 없는 소통만이 차고 넘친다. 스스로에게 도취될수록 이웃과의 관계는 힘들어지고 외롭다. 셀프에 중독된다는 것은 홀로 남는 것이고, 주위 사람들은 익명의 대중이고 희미한 배경일 뿐이다. 나 자신에게 중독된다는 것은 나 이외의 것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중독성이 강한 것은 마약도 알코올도 아닌 바로 ‘나’일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어린아이였을 때에도, 이제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완연한 나이가 되어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은 다름 아닌 ‘나’다. 수도생활을 하면서 수련하고 기도하고 또 절제하면서도 여전히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나’인 것도 사실이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움직이는 사랑의 에너지가 ‘나’에서 ‘너’로, 공동체로 옮겨질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강박적으로 디지털 기기에 손을 뻗고 스크린을 바라보고 수시로 셀카를 찍어대듯 ‘나’만 바라보는 세상이다. 언제나 새롭고 흥분하는 경험으로 가득한 일상이다. ‘함께’의 가치에서 멀어지는 ‘각자도생’의 사회는 공동의 경험에서 공감하는 공동의 느낌도 희미하다. 그렇기에 평생토록 꺼내보고 싶은 추억의 앨범 한 장 찾을 수 없다. 그리움이 사라지는 세상, 공동체의 위기다.


영성이 묻는 안부

나에게 집착하고 나를 채우려는 탐욕이 부풀려지면 영혼과 정신의 가치는 소멸되고 영적 대화는 더 힘들어지겠지요. 자기애에 빠지게 하는 가상의 소통은 이웃을 살피는 일을 소홀하게 하고, 하느님과의 대화도 어렵게 만듭니다. 윌리엄 파워스(William Powers)의 저서 「속도에서 깊이로」는 마법과도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는 가장 소중한 내면을 잃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어느 때보다 ‘깊이’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저자는 소셜미디어 속에 흠뻑 젖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바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끄고 주위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 멈추고 호흡하고 깊이 있게 생각할 것을 권합니다. 속도를 늦추고 깊이 내려가 ‘함께’하며 연대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그때, 힘들고 고단할 때 그리워할 수 있는 추억의 한 페이지에서 저와 여러분의 공동의 느낌을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 사순 시기를 시작하면서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는 디지털 단식, 디지털 디톡스에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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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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