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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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정치우의 위대한 기적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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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란 과연 무엇일까요? 치유란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입니다. 진실한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면 하느님은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적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기도의 응답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지금도 매일 그런 기적을 느끼고 있습니다. 모든 신앙인들은 한 하느님을 믿고 고백하고 따릅니다. 모두 똑같이 하느님 믿고,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똑같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저의 기도나 다른 신앙인들의 기도나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제가 기도와 치유의 기적을 매일 체험한다면, 모든 신앙인들도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인 기도, 치유 기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시기를 청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복음화를 위한 기도가 절실한 실정입니다. 단순히 선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교 신자 몇 명 늘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그런 세상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 모든 것이 개인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은 은총의 생활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서 주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그 좋은 관계 속에서 언제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생활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듭니다. 수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많은 시간을 내서 성당에 가고, 기도를 하고, 봉사도 하는데, 왜 하느님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는 것 일까요? 왜 하느님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는 것일까요? 믿음은 하느님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것 자체가 은총입니다. 하느님이 주셔야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이유는, 그 친한 관계를 통해 믿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하느님과의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선행조건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한다면, 그래서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면, 상상하지 못했던 축복과 은총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얼굴에 온통 행복과 기쁨이 넘쳐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얼굴부터 달라집니다.

만약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면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주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생활로 옮기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생활은 훈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기도생활입니다. 항상 강조하지만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생활’입니다.

기도가 구체적으로 삶 안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기도생활은 곧 봉헌생활입니다. 봉헌의 의미는 맡기고 의탁하는 것입니다. 내 삶을 당신께 드리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봉헌된 삶을 살고 있나요? 삶을 주님께 드렸나요? 삶을 주님께 드리면, 주님이 어디로 이끌건 따라가게 됩니다. 나를 어떻게 활용하건, 어떻게 쓰시건, 그냥 쫓아가게 됩니다.

지금 주님을 내 마음대로 끌고 다니고 있나요? 아니면 주님의 이끄심에 나 자신을 맡겨 드리는 삶을 살고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 주님을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주님 더러 “제 뒤에 쫓아오십시오. 내 마음대로 길을 갈 테니 뒤에서 잘 좀 밀어주십시오”라고 합니다. 하지만 봉헌된 삶을 사는 이들은 주님을 앞장 세웁니다. “당신께서 가시는 대로 제가 쫓아가겠습니다” “당신이 하라고 하면 하겠습니다” “당신이 이 길로 가면 그 길이 어딘지 모르지만 쫓아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주님! 당신께 나 자신을 봉헌합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입만 열면 자신을 봉헌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때의 봉헌은 입으로만 하는 봉헌, 말로만 하는 봉헌입니다. 이런 분들은 온전히 주님 안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앙 선조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모든 삶을 온전히 주님을 위해 바치셨습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순교적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부분 신앙 선조들의 삶을 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기도생활을 올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 나라로 초대된 사람입니다. 세상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도록,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살도록 초대된 사람입니다. 그 초청장을 보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참으로 행복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수많은 말씀을 하시고, 치유해 주시고, 기적을 일으키시고,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당신 목숨까지 바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바로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 은혜를 갚을 때가 왔습니다. 우리는 은총을 넘치도록 받은 존재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았는데, 무엇을 더 이상 필요로 하겠습니까? 더 이상 받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받은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충만함을 이웃에게 베풀고 나눠야 합니다. 여기서 나눠야 한다는 것은 물질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나눠야 합니다. 은총으로 인해 충만해진, 그래서 충만한 행복에 젖어 있는 그 마음을 나눠야 합니다.


글 _ 정치우 (안드레아, 복음화발전소 이사장) 
복음화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1990년 5월 새로운 복음화 사업을 시작, 복음화학교를 설립하여 재복음화 및 선교를 위한 예수님의 제자훈련 교육 체계를 확립시켜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평화방송 TV를 통해 복음화학교 강의를 했다. 전국의 본당 및 단체의 초대로 수백회의 특강과 견진 교리, 피정 등을 했으며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에 많은 글을 연재하는 등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복음화학교를 은퇴한 이후 ‘복음화발전소’를 설립, 삶을 통한 새로운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이 있어 걸어 갑니다」 「위대한 기적」 「위기의 대안으로서의 평신도영성」 등이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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