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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길에서 돌아선 전장운, 교회 서적 출판하다 순교

[ 윤영선 교수의 우리 성인을 만나다] 9. 성 전장운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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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선 작 ‘성 전장운 요한’

출 생 | 1811년 서울
순 교 | 1866년(55세) 서소문 밖 / 참수
신 분 | 상인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우리는 인간적인 나약함에 굴복하여 끊임없이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엇길로 나갔다가 되돌아가는 일도 다반사다. 오류가 크면 클수록 지나간 삶의 자취를 성찰하게 하는 사순 시기가 고마운 이유이다. 사순 주간에 복음은 ‘회개’를 선포한다.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주어진 숙명적 굴레가 아무리 단단해도 ‘회개’가 선사하는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극심한 고문으로 넘어졌다가 신앙 되찾아

‘회개’는 헬라어 신약 성경에 기록된 ‘메타노에오(μετανοω)’라는 단어의 번역이다. 본래 뜻은 ‘뒤에(후에) 깨닫다’라고 한다. 잘못을 깨닫고 개선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는 새롭게 각성해 마음을 바꿔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다는 ‘회심(悔心)’의 의미가 훨씬 강하다. 진정한 회개란 생각과 마음에서 비롯된 전인격적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전향적 삶의 태도를 묵상하면서 전장운 요한을 기억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오류를 바로잡은 신앙,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배신의 길에서 돌아선 그의 ‘메타노에오’ 때문이다.

전장운은 1839(기해)년 박해 때 체포된 적이 있다. 극심한 고문에 못 이겨 천주를 저버리고 이른바 배교자가 되었다. 고통을 못 이겨 넘어졌다고 하나, 그게 평범한 우리의 나약함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그가 천주께 돌아온 계기는 첫 사제 김대건과의 만남이었다. 1846년 김 신부에게 성사를 받고 신앙의 활력을 되찾았다.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로마 5,20)라는 말씀처럼 큰 오류는 깊은 참회와 더불어 은총으로 맺어지기 마련이다. 참회자의 진실한 삶은 베르뇌 주교로 하여금 교회 일을 맡기도록 인도되었다. 교회 서적을 출판하는 사명이 전장운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그 거룩한 소명에 생명을 바쳤다.

“내가 어디에 간다 하더라도 천주님이 부르시면 나는 체포될 것입니다. … 그러나 여기에는 교우들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귀중한 물건들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 ‘목판’이 교회에 매우 유익하다고 믿기에 어떠한 불행이 닥친다 하더라도 달게 받으며 여기를 지키렵니다.”


병인박해 때 ‘목판’ 지키다 순교의 월계관

회개한 전장운의 삶은 교우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했고, 진정한 신자로 거듭난 배교자에게 마침내 1866(병인)년 박해 때 순교의 월계관으로 화답되었다.

성인을 만나러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옆에 있는 가톨릭출판사에 갔다. 이곳은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출판사라고 할 수 있다. 성인이 목숨과 바꾼 소명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붉은 벽돌 건물 위로 전장운 요한 성인이 지켜낸 ‘성교요리문답’ 목판을 들고 계신다. 그의 손으로 엮어진 지혜와 진리의 말씀이 가릴 수 없는 밝은 빛처럼 세상천지로 뻗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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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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