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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월간 꿈 CUM] 인생의 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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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나약함으로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에 얽매여, 과거에 연연하여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용기를 가지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지나간 과거의 일에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말고 새롭게 시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아직도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 아직도 과거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 지나간 과거의 잘못에 너무 얽매여 주저앉는 사람은 결코 하느님께서 주시는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용서를 진정으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과거의 잘못을 캐내고 따지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지나간 잘못의 수렁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부산에 가면 있는 감천동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과거 달동네였던 이 곳은 6·25때 피난민 수용소가 있었던 자리입니다. 그곳 주민 대부분은 부둣가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거나 영세한 하청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 노동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달동네에 사는 남자 중 3분의 1이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들은 항상 가난을 비관했고, 그래서 노동의 고통을 술로 달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달동네에 수녀님들이 오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기 위해서, 그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기 위해서 그곳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알코올 중독자가 많아서인지 그곳에서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같이 싸우고 욕하고 부숴댔습니다. 그러다 아무데서나 배를 깔고 누워 잤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모습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 없는 고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수녀님들은 씻겨주고 먹여주고 잠을 재워주었습니다. 그러나 수녀님들은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묻지 않았습니다. ‘왜 허구한 날 술만 퍼마시고 싸움질이나 하느냐?’고. 그리고 단 한 번도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왜 욕하고 부숴대고 고함을 지르느냐?’고.

수녀님들은 그저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그들을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조용한 웃음과 해맑은 미소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결국 매일 술을 마시고 싸움질하고 욕을 해대던 달동네가 서서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나갔습니다.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욕하지 않고, 기물을 부수지 않고 일터에서 성실히 일하는 노동자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그들은 수녀님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왜 저희의 잘못을 따지지 않았습니까? 왜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묻지도 않고 나무라지도 않았습니까?” 수녀님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느님은 따지지 않는 분이십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들추어내고 허물을 캐내고 응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진정으로 회개하기만을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런 하느님을 믿고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은, 우리도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으면서 남이 저지른 사소한 잘못에는 화를 내고 따진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용서를 배반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받는 만큼 나도 남에게 용서를 베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잘못한 사람의 죄를 따지고 캐내고 단죄하는 것, 이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잘못한 사람들을 향해 분노의 고함을 지르면서 돌을 던지는 것, 이것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을 범한 그 사람이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살기를 바란다면, 잘못을 범한 그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예수님의 따지지 않는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 짓지 마라.”(요한 8,11)

용서하는 사랑은 단죄하지 않습니다. 용서하는 사랑은 따지지 않습니다. 용서하는 사랑은 다만 회개하기를 기다립니다. 용서하는 사랑은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뉘우치며 돌아서는 사람의 잘못을 깨끗이 없애주셨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죄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현재는 하느님의 은총에,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드립시다.”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대외협력본부장)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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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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