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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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다(요한 13,1-20)

[월간 꿈 CUM] 꿈CUM 묵상_예수의 일생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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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이 당황합니다. 스승님인 예수님께서 직접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발을 닦아 주겠다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깨끗하고 위생적인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길도 대부분 정비가 잘 되어 있어, 흙을 직접 밟고 다닐 일이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시대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신고 다니는 그런 좋은 신발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제자들의 발에는 새까맣게 때가 묻어 있었을 것입니다. 각종 오물도 묻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냄새나고 더러운 발을 지금 예수님께서 직접 손으로 닦아 주십니다.

예수님이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척 두르셨습니다.(요한 13,4 참조) 그리고 베드로에게 다가오십니다. 베드로가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칩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요한 13,8)

그러자 예수님이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8)

이 말을 들을 베드로가 이제는 거꾸로 오버합니다. 

“그렇다면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주십시오.”(요한 13,9)

아마도 이때 예수님은 짜증이 나신 듯합니다. 그래서 “발만 씻으면 된다”(요한13,10)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지금 여러분의 발을 씻어주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내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이 우습게 보이나요? 아닙니다. 고맙고 송구스러워 미칠 지경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예수님께서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내 발을 씻어주실까요. 더러운 내 발을 손수 씻어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저는 이 ‘예수님의 모범’을 ‘예수님의 노하우(knowhow)’라고 묵상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될 수 있는 아주 확실한 노하우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이때의 왕은 세속적인 왕이 아닙니다. 세상의 왕들은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들이 행차할 때는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나 김수환 추기경님 앞에서 고개를 숙입니다.

왜 그럴까요. 무서워서? 잘 보이려고? 출세하려고? 아닙니다. 교황님과 추기경님이 우리에게 “내가 교황이니까, 내가 추기경이니까 알아서 잘 섬겨!”라고 말씀하신 일이 있나요?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고개를 숙입니다. 교황님과 추기경님이 존경스럽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닦으시면서 직접 가르쳐 주신 노하우입니다.

제가 수도원에서 관구장 직을 맡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관구장이 되고 나니까 가장 먼저 어깨에 힘이 딱 들어가더라구요. 겉으로는 겸손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수사님들은 내가 지시하는 말을 무조건 들어야 해!’라고 생각했던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섬겨야 진정으로 권위 있는 사람이 됩니다. 권력의 힘에 눌려서 하는 섬김은 한낱 신기루와 같습니다. 영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납니다. 그 향기에 사람들을 매료됩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입니다.

오늘날 가장의 권위가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아빠가 자녀에게 이것저것 억압적으로 명령을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권위가 아닙니다. 매일 자녀들에게 엄하게 혼을 내면, 앞에서는 자녀들이 고개를 숙일지도 모릅니다. 용돈을 받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섬기고, 아내를 섬길 때 진정한 권위가 생겨납니다. 만약 요즘 각 가정에서 권위가 사라지고 있다면, 그것은 섬기지 않는 세태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존경받기 위해 무릎을 꿇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삶의 기본 바탕이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가르쳐 주신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4-15)

예수님이 우리더러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를 낮은 위치로 억지로 끌어 내리기 위해 하신 말이 아닙니다. 우리를 끌어 높이려고 스스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 참조)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되는 비결, 천국의 문을 열 수 있는 노하우 입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삽화 _ 김 사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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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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