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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이야기] 금송아지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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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단에서 브에르 세바까지’(1사무 3 20 등)를 가리킨다. 그 가운데 ‘단’은 고대 단 지파가 정착한 땅으로(판관 18장 참조) 가나안의 최북단이다. 지금은 ‘텔 단’이라 불리는 유적지가 되었는데 물이 풍부하고 숲이 우거져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기원전 10세기 후반 북왕국의 태조가 된 예로보암은 자기 백성이 하느님을 섬기러 예루살렘 성전으로 갈까 봐 단과 베텔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었다(1열왕 12 28-33 2열왕 17 16-19). 베텔 제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단에는 당시 유적이 일부 남아 있다. 성경 기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제단은 자체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이집트 탈출 시절 이스라엘이 하느님처럼 숭배한 금송아지(탈출 32장)를 떠올려 주어 더욱 눈길을 끈다. 예로보암이 금송아지를 택한 까닭이 그때 사건과 관련 있다는 암시라도 해주듯.

이집트 탈출을 기원전 13-12세기로 본다면 예로보암 시대까지 200년 이상 시간차가 난다. 그렇지만 두 사건을 자세히 보면 공통분모가 여럿 드러난다. 우선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하느님이 여기 계십니다’라는 예로보암의 선포(1열왕 12 28)는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이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신이시다’라고 선언한 탈출 32 4을 비슷하게 되풀이한다. 예로보암 아들들의 이름이 ‘아비야’와 ‘나답’(1열왕 14 1 15 25)인 것은 아론의 아들 ‘아비후’와 ‘나답’을 떠올리게 한다. 아비후와 나답이 주님께 속된 불을 피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레위 10 1)은 북왕국의 종교적 탈선을 암시해준다. 예로보암이 금송아지 제단에 레위인들을 배제한 일(1열왕 12 31)은 광야에서 금송아지 숭배자들을 처단할 때 레위인들이 크게 활약한 사실과 관련 있어 보인다(탈출 32 25-29). 게다가 예로보암은 예루살렘을 견제할 만큼 강력한 조치가 필요했기에 그곳에서 합법 사제로 봉직하는 레위인들을 의도적으로 제외했을 가능성이 높다.

위 두 사건에 송아지가 연루된 까닭은 이스라엘 주변의 고대 근동인들이 소를 신성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신이 소를 발판처럼 밟고 서 있는 동상을 만들기도 했고 신의 현존을 상징하며 날개 달린 소 형상을 신전이나 궁전 입구에 세워 지키게도 했다. 특히 이집트인들은 ‘아피스’라 불리는 소를 신으로 섬겼다. 게다가 성경도 하느님을 ‘야곱의 장사’(창세 49 24 등)라 불렀다.

히브리어로 ‘아비르 야아코브’라 하는 이 말은 ‘야곱의 황소’로 직역되므로 하느님의 권능을 황소의 힘에 비긴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송아지 상을 만들었던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뒤 ‘이제부터 주님을 경외하고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섬긴 신들을 버리라’고 촉구했다(여호 24 14). 다만 초기에는 이스라엘이 송아지 상 자체를 신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계약 궤 위를 장식한 ‘커룹들’처럼 하느님의 옥좌를 상징하는 매체(1사무 4 4 등 참조)로 여긴 듯하다. 그럼에도 죄가 된 까닭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에게서 송아지에게로 시선을 빼앗기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어떤 것도 신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십계명(탈출 20 4 신명 5 8)의 영향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피조물에 불과한 송아지 안에 하느님의 존재를 가둠으로써 그분의 거룩함이 축소될 것이다. 우려했던 일은 실제가 되어 기원전 8세기 호세아는 송아지 상이 대장장이 작품에 불과하며 결코 하느님이 아니라고 강조한다(호세 8 6). 그렇다면 송아지와 달리 커룹들 곧 케루빔이 금지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었나? 케루빔은 얼굴이 사람·황소·사자·독수리로 4개였으며(에제 1 10) 우리가 아는 어떤 피조물과도 동일하지 않다. 반면 송아지는 쉽게 볼 수 있는 짐승이므로 그 자체를 신성하게 떠받들 위험이 있었다.

아론은 금송아지 사건 뒤에도 대사제로 계속 임직한다. 그가 숭배 목적으로 송아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케루빔처럼 하느님의 왕좌를 상징하려고 만들었음을 알았던 까닭이다. 신명 9 20은 주님이 아론을 파멸하려 하셨으나 모세의 중재로 막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예로보암은 탈출기의 죄악을 북왕국에 뿌리내리게 했기에 심판을 면치 못했다(2열왕 17 21-23). 그 탓에 북왕국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함락돼 이스라엘의 열 지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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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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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흩으신 분께서 그들을 모아들이시고 목자가 자기 양 떼를 지키듯 그들을 지켜 주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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