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6. 작물은 주인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매미와 풀벌레 우는 소리가 한창이다. 그중에 매미는 유난히 큰 목청을 뽐내고 있다. 그 흔한 자동차 소리 하나 없는 벌레들의 하모니 속에서 나는 그들을 돌보는 숨소리로 그들과 하나가 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 속에서 살다 보니 문득문득 그들이 무엇을 고파하는지 느끼게 되고, 우리는 그저 그들의 필요를 알아보고 그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내 몸, 우리의 몸이 그들이 처한 가뭄을 목마름으로 느끼게 되면 물을 주는 것이다.

함께 사는 영주 수녀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얘들이 지금 뭘 필요로 하는지 그냥 알아요.” 땅과 뭇 생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것이 우리가 밭을 돌보는 일이다. 만약 우리가 저 밭에서 고추는 몇 관을, 가지 몇 개를, 고구마 몇 상자를 수확했는지에 관점이 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공동체는 이런 대화를 한다. “땅이 더 건강해졌어요.” 눈에 보이는 작물을 보며, 땅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농사 방법이다. 그러다 보니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물도 ‘감사의 제물’로 봉헌하게 된다. 땀이 비 오는듯한 몸을 이끌고 부지런히 생명을 돌보는 자신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농부는 돌보는 생명에 그의 땀방울로 세례를 주는 것이구나!’ 땀방울은 그들에 대한 사랑의 인증이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농부의 길이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 아랫집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허허, 고추밭에서만 살지 말고 야콘밭도 가봐야지.” 나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몰라서 “왜요, 할아버지?”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밭에 작물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라. 그런데 수녀님이 고추밭에서만 사니까 고추는 잘 되는데, 저기 야콘은 비리비리하잖아.” 정말 맞았다. 그때 우리는 고추를 많이 따고 싶어서 고추에 전념하고 있었다. 야콘에게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자신이 마치 자녀를 키우면서 사랑 없이 돈으로, 혹은 물건으로 키우는 마음처럼 다가왔다.

예수님께서는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말씀하셨다. 밭의 생명도 농부의 음성과 발소리를 알아듣고 안심하고 자란다. 복음의 이 원리가 우리 삶의 원리와 일치한다는 것이 말씀의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라, 더욱 이 일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목자이다.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지만 착한 목자는 그들과 함께한다. 양들의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밭의 생명이 농부의 음성을 듣고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겠지만, 농부가 그들의 소리를 알아듣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삯꾼처럼 그들을 거두어 이용가치로 보던가 아니면 그들을 버리고 떠나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녹음의 풍성함처럼 여름날 우리 밥상의 풍요로움을 볼 때, 감사함과 한편으로는 이 풍성함에 함께하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며 미안한 마음이 된다. 때때로 자연 안에서 느끼는 이 평화로움이 세상 곳곳에서 분투하고 있는 모든 어려움과 괴리되어 있는 듯 느껴질 때 정말 마음이 어려워진다. 그럴 때 나는 밭으로 나가 더 땅으로, 바닥으로 가까이 몸을 기대어 손을 쓸어준다. 그리고 떠나지 않겠다고, 끝까지 돌보겠다고,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마음으로부터 고백한다. 내가 세상의 모든 어려움에 함께할 수 없지만, 생명을 돌보는 이 자리에서 기꺼운 이 삶이 공명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고 믿으며 오늘을 사는 것이다.

‘형태 공명’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은 이 말이 정말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이 자리에서 내가 희망을 품고 생명을 돌보면 세상 어느 자리에서 누군가가 생명을 돌보는 행동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희망이다. 파괴를 일삼는 인류의 태도를 내 자리에서 나부터 돌릴 수 있다고 믿고 생명으로 전환하는 ‘생태 공명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1-08-1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7

2베드 3장 8절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