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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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이야기](88)선택할 수 없는 상황, 선택할 수 있는 감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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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함께 사는 신부님들과 직원들에게 축복을 받은 새 차를 몰고 생태마을을 나섰다. 내가 사는 성필립보 생태마을은 중앙고속도로 신림 IC에서 나와 산길로 40㎞를 더 들어가야 한다. 이 길은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들고 기슭을 깎아 도로를 만들었기 때문에 굴곡이 심할 뿐 아니라 낙석 위험이 있다. 한밤중이면 야생동물들의 출현이 빈번하고, 한겨울이면 블랙 아이스로 차가 전복되는 사고가 잦은 길이기에 항상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아직 적응도 하지 못한 새 차라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다. 출발한 지 30여 분이 흘렀을 때, 갑자기 내 눈을 의심할 광경이 벌어졌다. 전방 1시 방향에서 축구공만 한 돌이 산 위에서 떨어져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돌은 다행히 보닛 바로 앞에 떨어져 두세 조각으로 부서진 후 차 밑을 통과했다. 그러나 오른편 뒷타이어 안쪽이 찢어지고 스티어링 휠에 손상이 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다. 순간적으로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곧 보험회사에 연락해 견인 서비스를 기다리면서 이 사건을 되짚어 봤다.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왜 하필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라는 것이었다. 평상시 잘 일어나지도 않는 일 같았고, 누구나 경험하는 일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나는 이 경험을 하게 되었으며, 그것도 처음으로 새 차를 끌고 나온 이 순간에 그 일이 발생했는지 의구심이 든 것이다.

하지만 훈련받은 뇌는 곧바로 이 사건을 “불행 중 다행”으로 재해석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하지만 작은 차량 손상으로 마무리되어 참으로 감사한 사건이다. 만일 차를 조금만 더 빨리 몰았거나, 아니면 돌이 조금만 더 늦게 떨어졌다면 더 큰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축구공만 한 돌이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면 질량과 낙하속도를 계산해 볼 때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이만한 사고로 마무리된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의 머릿속에는 ‘일상 중 불행’인 사건과 ‘불행 중 다행’인 사건, 이 두 가지 해석이 서로 경쟁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불평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이 번갈아 가면서 발생하는 양가감정의 상태가 되고 말았다. ‘불행’과 ‘다행’ 사이를 평행하게 오가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팽팽하게 맞서는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결국 어디에서 결말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그 결과에 따라 이 사건을 체험한 나의 감정 역시 최종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내 마음 안에 감사한 마음 보다는 불쾌한 감정이 먼저 일어났던 이유는 명확하다. 분명히 이 사건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판단이 무의식적으로 먼저 일어났기 때문이다.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어떤 생각이 먼저 스쳐 지난 후 찾아온다. 마치 번개가 친 후 몇 초 뒤에 천둥이 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이때 상황에 대한 해석과 판단, 즉 생각이 긍정적이면 감정도 긍정적으로 올라온다. 하지만 상황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일 경우, 그 감정도 역시 부정적으로 흐르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 사건을 무의식적으로 부정적 사건으로 해석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에 이런 비슷한 유형의 사건사고를 겪을 때마다 일반적으로는 긍정해석과 긍정감정이 먼저 체험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와 반대로 부정해석과 부정감정이 먼저 발생했다. 분명 평소에 체험하는 사건사고와 다른 그 어떤 해석이 첨부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분명 단순히 죽을 뻔한 사고였다는 생각 그 이상의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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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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