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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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47.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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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오는 곳이 있어서 정말 반갑다. 그런데 이미 마른 바닥을 드러낸 강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강화에 계시는 수녀님과 통화하며 지금 농촌의 상황은 어떤지 여쭈었다. 답은 예상한 대로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금 농촌에서는 농업용수 때문에 애타는 농민들이 많고, 심지어는 주민들끼리도 자기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종종 다투기도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정말 기후위기를 알리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내가 걷고 있는 도시의 분위기는 언뜻 보기에 이런 직접적인 위기로부터 제외된 공간으로 보인다. 코로나 이전처럼 대부분 사람이 거리를 다닐 때에 커피가 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들고 다니며 웃고 있는 얼굴들은 ‘위기’를 알지 못하는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보인다.

지난겨울 가톨릭기후행동에서 금요기후행동으로 세종로 사거리에서 피케팅을 할 때에 맞은편에서 한 노 수녀님이 피켓을 들고 있는 나에게로 천천히 걸어오시더니, “수녀님, 제가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될까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연세 지긋하신 수녀님께서 관심을 보여주시는 것에 감사해 “네 수녀님, 찍으셔도 돼요”라고 말씀드렸다. 수녀님께서는 사진을 찍으시고는 “저는 성공회의 카타리나 수녀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즉시 떠오른 분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사제가 되신 수녀님이셨다. 내가 반갑게 인사를 드리자, 정말 겸손한 표정으로 그냥 수도자 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덧붙이셨다. 그러시더니 사진을 찍으신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저는 이 도심 한복판에서 수녀님이 ‘기후위기, 우리가 바꿀 수 있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며, 미얀마에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가 죽을 위기에 처한 시민들을 위해 군인들 앞에 무릎을 꿇었던 수녀님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 눈에는 그 수녀님과 수녀님의 이 기후행동이 다르지 않게 보입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는 여러 차례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시고 조용히 자리를 떠나셨다. 수녀님의 지지는 묵묵히 정의를 말하는 이들 모두를 위한 ‘응원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지금 나는 가수 안치환의 ‘귀뚜라미’라는 노래를 나도 모르게 부르고 있다. 노래의 가사 오늘 내 생각과 같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소리는 아직 노래가 아니오. … 숨 막힐 듯 토하는 울음. 그러나 나 여기 살아있소. 보내는 내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구의 가슴 위로 실려 갈 수 있을까.”

거리 피케팅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경찰청의 형제님이 계시는데, 얼마 전 버스 안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형제님께서는 1년 전 우리의 피케팅을 보시고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1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경찰들도 기후행동의 필요성에 대하여 공감한다신다. 또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고도 전해주셨다. 기후행동 피케팅을 하면서 목소리 없는 이 외침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그들의 가슴 위로 실려 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신다. 장정만도 5000명가량이나 되는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빵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린다. 미약한 자신들의 상태를 말씀드린 것이다. 그랬더니 그 미약함 그대로를 당신 손에 올리시고 아버지께 감사드리신 다음 떼어 나누어주시도록 하신다.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으신 채로 감사드리고, 그것을 떼어주도록 하셨는데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

오늘 우리는 기후위기 앞에서 엄청난 변화가 필요다. 그런데 한순간에 바꿀 엄청난 일을 상상하다가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미약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놓는 행동이 필요하다. 침묵 속에서 하는 그 미약한 행동이 모두를 배를 불리고 살릴 행동임을 믿으며, 묵묵히 피켓을 들고 싶다. 그러나 ‘너희가’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눈빛이 미약한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끼는가?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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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06-1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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