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금주의 성인] 성 로도비코 파보니 (4월 1일)

1784-1849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신부, 안코라 출판사 설립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로도비코 파보니 성인. 사진=굿뉴스

로도비코 파보니 성인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지방의 브레시아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활기 넘치고 총명했던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관심을 갖고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기민하게 이해했습니다. 로도비코는 어려서부터 후에 브레시아의 주교가 된 도미니코 수도회의 카를로 도메니코 페라리 신부의 집에서 신학교육을 받으며 사제직을 준비했습니다. 사제품은 1807년 브레시아에서 받았습니다.

1818년 로도비코는 보육원과 직업학교 설립 허가를 받고 성 바르나바본당 주임 신부로 임명되면서 처지가 딱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1821년 ‘성 바르나바 학교’를 세웠고 소년들은 목수, 은세공인, 대장장이, 제화공, 염료 제조 기술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로도비코는 처음으로 농아들을 학교에 받아들였고 농장을 구입해 농업학교도 세웠습니다. 1823년 ‘안코라 출판사’의 전신인 ‘성 바르나바 학교 출판사’를 설립했습니다.

로도비코는 자신의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사제와 수사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만들었고, 이는 1843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1847년 브레시아교구의 주교좌 참사위원장 루치 몬시뇰이 ‘원죄 없으신 성모의 아들회’(파보니아니)를 설립, 그해 12월 로도비코와 첫 회원들의 수도 서원이 거행됐습니다.

1849년 3월 브레시아가 오스트리아에 저항했던 열흘 동안, 브레시아는 약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콜레라마저 유행해 시민들을 돌볼 책임을 느낀 로도비코는 12㎞ 떨어진 사이아노 언덕에 있는 수련소까지 소년들을 이끌며 애덕 행위를 완수했습니다. 일주일 뒤인 1849년 4월 1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 밝아오던 새벽녘 로도비코는 하느님 품에 안겼습니다.

교육에 대한 로도비코의 이상은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자들을 훌륭한 사회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했습니다. ‘노동헌장’이 반포되기 50년 전 이미 로도비코는 사회 정의의 종교적 의미를 이해하고, 스스로 고용인들을 대우하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로도비코는 후대의 요한 보스코 성인처럼 격려하고 예방하는 교육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엄격함보다 관대함을 선호해 “엄격주의는 하늘나라를 텅 비게 만든다”는 말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로도비코가 설립한 수도회는 현재 브라질·콜롬비아·에리트레아·독일·이탈리아·스페인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책을 출판하는데, 로마에서는 성 베드로 광장 밖에서 안코라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로도비코는 2002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으며,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됐습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4-03-2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7

마태 5장 10절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